50~299인 중소기업에 대해선 근로시간 단축 적용 유예 바람직
추광호 일자리 전략실장 "산업·업무 특성 따른 제도 마련해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시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계도기간 부여보다는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치면서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따른 해외사업 차질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 52시간 관련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애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탄력⋅선택근로 단위(정산)기간 확대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 △고소득·전문직 근로자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 보완입법이 조속히 완료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 적용→대기업 경쟁력 약화 불가피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50명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인 중소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납기 지연 등의 문제를 겪고 있고, 이 때문에 납품받는 대기업의 경쟁력도 동시에 약화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규인력을 채용해야 하는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중소기업은 신규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없다. 여건이 되는 중소기업도 구인난 때문에 신규인력 채용이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기는 마찬가지다.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의 생산 수준이 급전직하해 납기 지연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경연 관계자는 "원청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 하청기업이 신제품에 포함되는 새로운 시제품을 적기에 납품하지 못해 관련 산업의 개척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계도 기간 부여해도 불법성은 그대로

한경연은 정부가 보완 방안으로 제시한 계도 기간은 법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다수의 영세 중소기업 사업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등 시장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업장 감독이나 진정 건은 고용부가 시정조치 등의 행정 처분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고소나 고발 건은 형사사건인 만큼 수사 후 사건을 검찰에 송치돼 사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검찰의 판단에 따라 심각한 위반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체로 정책 대응 능력이 좋지 않아 계도 기간이 부여돼도 효과가 있을 지도 의문이라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절반이 넘는 중소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준비를 완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5일자 중소기업중앙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65.8%가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계도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중소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준비를 완료할 수 있을 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에 한경연은 시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50인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근로시간 단축 적용을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근로시간 단축 및 관공서 공휴일 적용 의무화, 해외 사업에 차질 우려도

해외사업장에 파견된 국내 근로자는 한국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건설회사 등 해외사업장에 국내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해외 현지사업 진행에 애로를 겪는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현지국 또는 발주처가 주 6일 근로에 기반해 공사기간 준수 등을 요구할 경우 현지 인력을 관리·감독하는 국내 파견 근로자들은 주 52시간제를 사실상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시간제를 활용해서 대응하고 있지만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는 단위기간이 짧아 업무의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내년 1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관공서 공휴일 적용이 의무화되면 해외에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은 기업들의 애로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국 공휴일과 국내 공휴일을 동시에 쉴 경우 공사 소요기간도 연장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경연 관계자는 "해외 사업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해외 파견 국내 근로자에 대해선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한·중·일 3국 근로시간제도 비교 도표./자료=한국경제연구원


◇일본, 다양한 유연근로시간제 활용…중국 조차 1년 단위 탄력근로제 활용

한경연은 우리나라와 노사제도가 유사한 일본은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연장시키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줄여 일정 기간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기준 근로시간(40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위기간은 취업 규칙에서 정하는 경우 2주, 근로자 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하는 경우 3개월(근로기준법 제51조)의 경우 2주·3개월이지만, 일본에선 1주·1개월·1년 단위로 운용된다. 일본의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 동안 1주 평균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별·주별로 근로자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다. 정산기간은 한국과 동일한 1개월이었으나 지난해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3개월로 연장됐다.

이는 근무시간을 근로자의 재량에 맡기는 재량근로시간제도 업무방식 등을 근로자 재량에 맡기고, 노사가 합의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인문·사회·자연과학 연구, 정보처리시스템 설계 또는 분석, 신문·방송·출판 사업에서의 기사의 취재, 편성 또는 편집, 의복·실내장식·공업제품·광고 등의 디자인 또는 고안, 방송 프로그램·영화 등의 제작 사업의 프로듀스나 감독, 법률서비스, 회계서비스 등에 한해 허용된다.

국내 법은 재량근로시간제도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전문직 종사자에 한해 허용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전문직 종사자 이외에 기획·계획 수립·조사·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 근로자에 대해서도 허용한다. 특히 연간 근로소득이 1075만엔을 초과하고, 연구개발·금융상품 개발·컨설턴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를 면제하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도 존재한다.

중국에서도 연속 업무가 필요하거나 계절적으로 업무가 집중되는 업종에 대해 탄력근로시간제와 성격이 유사한 근로시간 종합계산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는 주·월·분기·연 등을 주기로 근로시간을 종합 계산하는 근로시간 제도로, 평균 일 근로시간과 평균 주 근로시간(1주 40시간)은 반드시 법정기준 근로시간(1일 8시간)과 기본적으로 동일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교통·철도·우편·전신·수운·항공·어업 등 연속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는 직종, 지질·자원탐색·건축·제염·제당·여행 등 계절에 의해 제한 받은 업종, 식품가공업·패션생산기업·호텔·식당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 등에 해당 제도가 적용되는데, 최대 단위기간이 1년이다.

그리고 회사 고위직·외근원·판매원 등에게는 우리나라의 재량근로시간제 및 간주근로시간제와 유사한 '부정시근로시간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한경연은 근로시간제도 체계가 유사한 일본을 참고해 탄력근로 최대 단위기간과 선택근로 정산기간을 연장하는 근로시간 단축 보완 입법이 반드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논의 중인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 연장·특별 인가연장근로 사유 확대·고소득전문직 근로자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 등 근로시간 단축 관련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추 실장은 "해외사업장에 파견된 국내 근로자·R&D 부서 인력 등에 대해서는 산업 및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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