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권력 수사' 막혀…고위인사 개입 의혹, 불씨 여전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2018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폐쇄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조작과 증거 인멸이 조직적으로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를 받아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이 9일 새벽 기각됐다.

법조계는 표면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한 대전지검 수사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다른 기류가 읽힌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8일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주로 실무진이 청와대 비서관실과 소통했고 장관이 실무진의 소통 내용을 전부 알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17년 10월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현안 보고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히려 '청와대 연루설' 이상으로 직접 지시·보고 등 청와대 고위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불씨가 살아났다는 평이 나온다.

또한 이번 구속영장심사에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백 전 장관의 지시 및 관여를 놓고 '법정에서 다툴 문제'라고 판단했고, 이미 거의 모든 증거를 확보한 이상 증거 인멸을 우려한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검찰이 보고 있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자발적으로 원전 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처럼 청와대와 산업부가 모양새를 꾸몄다는 것이다.

백 전 장관 지시를 받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원전 관리 주체인 한수원을 부당하게 압박했고, 그 전체적인 지시·보고가 청와대를 정점으로 삼았다는 의혹이다.

법조계에서 언급되는 청와대 연루자는 한 둘이 아니다.

최우선적으로는 당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방침을 산업부에 전달한 채희봉 전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꼽힌다. 그 외로는 산업정책비서관실·기후환경비서관실 등이 주목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청와대에서 에너지전환정책TF팀을 이끌었던 김수현 전 사회수석, 문미옥 청와대 전 과학기술보좌관(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산업정책비서관실 A모 행정관, 기후환경비서관실 B모 행정관과 그 상사였던 김혜애 전 기후환경비서관이 거론되고 있다.

향후 관건은 대전지검이 확보한 물증 중 스모킹건의 유무다.

지난해 11월 수사팀은 한수원·한국가스공사·산업부 관계자들 핸드폰을 압수수색하면서 청와대 관련 물증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구속영장심사에서는 그 물증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감사원 감사가 허투루 진행된 것이 아닌 이상, 검찰이 지금까지 확보한 물증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계자들 진술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지 주목된다.

담당 수사팀인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는 혐의를 인정한 산업부 공무원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2명을 구속시켰다.

손발이 되어 움직인 공무원은 있는데 그 윗선은 정확히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 여부를 검찰이 과연 밝혀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