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수사 동력 잃었지만…'검찰에서 할 일 여기까지' 대권 여지 남겨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임기 142일을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4일 오후 2시 윤석열 전 총장이 공개적으로 사의를 밝힌 뒤 1시간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이제부터 윤 전 총장이 걸어갈 길을 정확히 예단하기 어렵다. '철저한 검찰주의자'라는 평에서부터 '대권 야심을 감춘 잠룡'이라는 평까지 극과 극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벌써부터 여러 풍문들이 쏟아진다.

우선 윤 전 총장이 그간 직접 지휘해 온 월성원전 사건을 비롯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이 직접 연루된 사건의 수사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

   
▲ 3월 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한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대검찰청
앞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동력을 잃은 대전지검 수사팀은 지난 4개월간 끌어온 원전 수사를 고위관계자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또한 이미 재판을 받고 있는 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사들에 대한 추가 기소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 큰 관심은 윤 전 총장이 이날 사의를 밝히면서 "검찰에서 제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대권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점에 쏠린다.

윤 전 총장은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정계 진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검찰 내부 여론은 격앙되어 있지만 차분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부장검사는 이날 본보 취재에 "청와대의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강행이 윤 총장의 퇴로를 정해둔 것"이라며 "징계 사태까지 잘 넘겼지만 수사권 자체를 박탈당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조직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다만 내부적으로는 이번 중수청 신설에 대한 반발 여론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분위기도 읽힌다"며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직을 던졌고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이 원하던 그림을 그리게 된 격이다. 저들이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의문이다. 윤 전 총장의 바람과 달리 중수청 신설을 강행하면 결국 자진 사퇴한 의미가 퇴색된다"고 밝혔다.

이어 "최소한 국회에 나가서 법사위 위원들을 비롯해 여당 중진과 직접 맞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며 "검찰 조직과 국민에 대한 명분을 생각하면 좀 더 시간을 끌었다가 직을 던지는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 그런 소수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 또한 이날 본보 취재에 "검사로서 평생을 살아온 윤 전 총장이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정치적 기반, 정당의 기반은 전무하다"며 "민주당 쪽은 당연히 배제한 상태에서 국민의힘 측도 힘들 것이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단죄한 것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윤 전 총장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제3지대가 유력하다"며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연대하여 또 다른 길을 모색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관측했다.

국민의당은 이날 안혜진 대변인 명의로 윤 전 총장의 앞날을 기대하는 논평을 냈다.

안 대변인은 논평에서 "현 정권에 맞서서 무너진 공정과 정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남은 일생의 모든 힘을 보태어 주기 바란다"며 "범법자 소굴이 되어가고 있는 부패 정권에 대항하여 피 끓는 국민의 열망을 위해 검찰 총장으로서 다 하지 못한 소임을 다해주시라"고 당부했다.

지난 1년 8개월간 문 대통령이 극찬한 검찰총장에서 징계 처분 및 검찰의 존폐 위기까지 겪고서 자리에서 내려온 윤 전 총장. 현 정권이 이제 1년 남짓 남은 가운데,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