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지난 25일 김형석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장판사는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협상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법원은 각하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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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 산업부 박규빈 기자 |
넷플릭스는 또한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줄 의무가 없다며 법률 대리인 김앤장을 선임해 법의 판단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 당사자 간 협상에 따를 문제인 만큼 사법부가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원고(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는 피고(SK브로드밴드)로부터 인터넷 망에 대한 연결과 연결 상태의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이 판결은 망 이용 대가에 대한 비용 지불이 당연함을 법원이 확인해준 것인 만큼 앞으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와 콘텐츠 제공자(CP, Content Provider) 간 망 이용 분쟁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는 곧 망 이용 대가 수취는 망 중립성과는 구분된다는 점이 명백히 인정됐다고 봐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됨에 따라 넷플릭스 스트리밍발 트래픽이 폭증하자 SK브로드밴드는 전용 국제 구간 회선을 증설한 바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SK브로드밴드가 망 중립성을 어겼다며 이용 대가를 단 한 푼도 안 냈다. 사실상 무임승차를 한 셈이다.
철퇴를 맞은 넷플릭스 측은 즉각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ISP들과 협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입장문을 잘 뜯어보면 그 어디에도 망 이용 대가를 내겠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적반하장 격의 태도를 보이고 있어 황당할 따름이다.
입장문을 통해 넷플릭스는 망 이용 대가 논란으로 공동의 소비자 이익 증진과 만족을 위한 논의가 가려지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며 책임을 SK브로드밴드 측에 전가했다. 또 "ISP가 콘텐츠 전송을 위해 인터넷 접속료를 지급하고 있는 개인 이용자들 이외에 CP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역할·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무임승차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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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로고./사진=각 사 제공 |
한 술 더 떠 넷플릭스는 소비자가 이미 ISP에 지불한 비용을 CP에도 이중청구하는 것은 자사가 아닌 SK브로드밴드가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어느 ISP에도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방식의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기도 했다.
한편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망 중립성 개념은 이용 대가를 내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주무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도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로부터 망 이용료를 받는 것을 특정 트래픽에 대한 임의 개입 행위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켄 플로런스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 부사장은 2014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 확인서를 통해 "당사는 미국 ISP인 컴캐스트·AT&T·버라이즌·TWC에 착신망 이용대가(Terminating access fee)를 지불하고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전 세계 어느 법원이나 정부 기관도 CP로 하여금 ISP에게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하도록 강제한 전례가 없다는 넷플릭스 측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2013년 12월 19일 파리 항소법원(Cour d'appel de Paris)은 "상호 접속 증설에 따른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는 것은 불공정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 상대방이 상호 접속 용량을 제한하더라도 적법하다"고 부연했다. 한국 법리로 설명하자면 '신의 성실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8월 14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도 ISP가 CP에게 자신의 가입자들과의 연결을 제공해 주고, CP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넷플릭스는 세계적으로 법적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울러 이번 판결 이후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로부터 어떠한 인터넷 접속 서비스도 제공 받지 않는 상태라며 대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내뱉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사업을 위해 계약을 체결한 SK브로드밴드와 소송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입장문 전체가 자가당착으로 점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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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브로드밴드는 코로나19 바람을 타고 넷플릭스 스트리밍 수요가 폭증하자 전용 국제 구간 회선을 증설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SK브로드밴드가 망 중립성을 어겼다며 이용 대가를 단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았다./사진=구글 데이터 센터 제공 |
이 외에도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망 근처에 데이터 서버가 있을 경우 접속을 하지 않아도 데이터가 전송될 가능성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과연 이게 인터넷 기반 사업을 하는 글로벌 ICT 기업이 할 소리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뜬금 없이 '인터넷 거버넌스 원칙'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종전까지는 '인터넷 기본 원칙'이라는 단어를 밀다가 해괴망측한 논리가 먹히지 않으니 자중지란의 행태를 보이는 것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넷플릭스가 자사 영향력을 동원해 망 중립성 개념을 자기들 편한 방식대로 해석해 SK브로드밴드에 응당 줘야 할 망 이용료를 주지 않으려 애써 몸부림 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넷플릭스는 판결문에 나와있는 'SK브로드밴드와 협의해 해결하라'는 문구를 강조하며 항소의 여지도 내비치고 있다. 설령 SK브로드밴드와 합의를 봤다는 빌미로 콘텐츠 이용료를 인상한다면 이는 소비자 권익 침해에 해당할 것이다. 원래 내야 할 정당한 대가를 소비자들에게 전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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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개토즈 소재 넷플릭스 본사 전경./사진=넷플릭스 홈페이지 |
그러잖아도 최근 791만명으로 기록된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 수는 토종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제공 업체(OTT, Over the top)들의 약진에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콘텐츠 중에 딱히 볼 게 없다는 혹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ISP에 대한 갑질과 서비스 품질 저하 이미지까지 겹쳐 기존 고객까지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싶나.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한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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