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안전관리 인력도 타 업계로 유출…예산 지원 적은 중견건설사, 안전관리직 기피 더 뚜렷
[미디어펜=이다빈 기자]"언제 깨져도 모르는 살 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현장 안전관리 업무를 기피하는 이유입니다."(대형건설사 직원 A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올해 초 본격 시행된 후 건설사 임직원들이 현장 안전관리 업무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어 건설사들이 진땀을 빼고 있다. 

다른 업계보다 상대적으로 위험 요인이 많은 건설업 특성상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형건설사의 기존 현장 안전관리 인력은 제조·유통·물류 등으로 이직해 유출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중견건설사의 경우에는 현장 안전관리 예산과 임직원 개별 보수는 그대로인데 사무 업무가 과중되면서 정작 현장에 직접 투입되는 인력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현장 안전관리직의 업무가 과중되고 책임 부담이 늘자 건설사들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지방의 한 건설 현장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 8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26일 제정된 후, 올해 1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사망자가 1명 이상 △동일한 원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인력 및 예산을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가 발생할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부상자나 질병자가 발생하게 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이 건설사 CEO에게 현장 사고의 직접적인 귀책을 물게 되면서 전국의 건설 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중대재해처벌법 본격 시행 불과 이틀 후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3명의 작업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삼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 1호에 오르며 이 사고가 아직 회사 경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후 DL이앤씨, 대우건설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이 되면서 CEO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설사들은 안전관리 인력 및 예산 확대, 현장 안전관리 교육 실시, 안전관리 부서 신설 및 전담조직 운영 등 중대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건설사들의 전국 각지 현장은 안전관리 인력난을 겪고 있다. 본사의 압박이 커지면서 업무는 과중되고 실제로 경영책임자가 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증가하면서다. 이에 기존 안전관리 인력은 유출되고 타 부서 임직원들도 해당 업무를 꺼려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직원 A씨는 "지난 2021년 초부터 현장 안전관리 인력을 충원하는 추세는 계속되고 있지만 직원들 중 해당 업무를 맡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현장 안전관리 관련 부서에 있던 기존 직원들도 올해 들어 일이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부분도 커지니 제조, 유통, 물류 등의 다른 업계의 안전관리 부서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장 안전관리직 기피 현상은 중견건설사의 경우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형건설사에 비해 예산과 기존 인력이 부족한 가운데 5인 이하의 건설사가 아닌 경우 중견건설사도 중대재해에 대해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되면서 늘어난 업무와 책임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중견건설사 수도권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 B씨는 "중견사의 경우는 (현장 안전관리 관련) 직원 보수는 커녕 부서 예산이 늘어난 경우도 별로 없다"며 "직접적인 지원은 없는데 위험 요인이 많은 건설 현장이 본사가 원하는 것처럼 '재해 제로(0)'를 완벽하게 이루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B씨는 이어 "사진을 촬영하고 일지를 적거나 서류 작업을 하는 등 사고가 나더라도 검찰·경찰 조사 시 안전관리조치를 충분히 했음을 보여줄 수 있는 '페이퍼 작업' 업무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너무 많이 늘었고 이와 같은 사무 작업의 규격도 더 깐깐해졌다"고 설명했다. 

또 "현장 안전관리 인력 충원이 어려워 인원은 그대로인데 페이퍼 작업이 늘어나니 현장에 실제 투입돼 인부들을 인솔하거나 작업을 직접 관리하고 체크하는 일에 일손이 부족한 아이러니한 상황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견건설사 직원 C씨는 "연봉을 1000만원, 2000만원 늘려준다고 해도 현장 안전관리 부서는 안 갈 것"이라며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가 아닌 해당 부서나 담당자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방침은 없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C씨는 이어 "시시각각 현장 사고의 위험은 과거에도 현재도 늘 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분명히 안전관리 담당자도 내부적인 징계 등 책임을 물게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이미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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