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보다 펀더멘털 강화…"부동산 침체, 수출·투자 악화 주의해야"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경제에 금융위기급 충격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경제 전문가 60%가 1년내 금융위기 충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들은 높은 가계부채에 기업 돈맥경화 심화에 따른 금융시스템 부실에 주목한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위기요인과 이에 대한 전문가 분석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배포한 '2022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 따르면 경제전문가 10명 중 6명은 '1년 안에 한국에서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하는 단기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기 충격 발생 가능성에 '매우 높음'이나 '높음'으로 응답한 비중이 58.3%로 집계됐는데 올해 6월 말 26.9%에 견주면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를 두고 학계 등 금융전문가들은 '지나친 공포'라며, '금융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카드사태나 저축은행사태 등과 같은 '사태'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도, IMF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위기'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해진 만큼, 부실 위험이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 한국은행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경제전문가 10명 중 6명이 '1년 안에 한국에서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하는 단기 충격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학계 등 금융전문가들은 '지나친 공포'라며, '금융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사진=김상문 기자


다만 최근 고금리 문제로 촉발된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수출·투자 악화 등에 따른 경제성장률 저하는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 은행 파산급 충격…"지나친 우려"

우선 서베이에 언급되는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사실상 은행의 파산위기를 뜻하는데, 은행들의 자본건전성, 대손충당금, 영업실적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친 우려라는 평가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시스템리스크를 언급하려면 은행, 건설사, 대우, 한보철강 등이 다 무너졌던 과거 IMF 외환위기 수준이 돼야 한다"며 "그때는 동화은행 평화은행이 통폐합되는 등 은행이 무너져 시스템리스크가 거론됐지만 최근의 상황은 은행까지 위험이 전이된 게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 저축은행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은행이 부실해진 게 아니라서 시스템리스크는 아니었다"며 "현재 또 다른 외부 충격이 있지 않는다면, 예상하는 문제들은 예측 가능하다. 부분적으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태 등과 같은 '사태' 정도의 위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초기단계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업권별 전망을 달리 했다. 은행권은 충분한 자본금과 충당금을 쌓아둔 데다 금리인상에 따른 영업실적 호재로 잔고가 두둑해진 만큼, 위기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분석이다. 다만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을 비롯해 자산담보부증권(ABCP)과 연계된 증권사, 건설사, 관련 업종 등이 다소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당장 금융시스템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 아니라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그런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불안요인이 상당히 있다고 해석하는 게 옳다"면서 "당국 차원에서 리스크 관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당연히 하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추가 위험 요인을 막기 위한 LTV 완화 등의 연착륙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중앙은행 포함) 세계 정책당국이 2007~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일본 장기침체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돈을 푸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도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확장정책을 펼쳤다"며 "향후 위기가 확산된다면 바닥을 찍을 때까지 충격이 있을 것인데, 정부가 이를 장기적으로 지속하거나 외환위기처럼 방관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환위기와 같은 '외생변수'가 아닌 내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인만 놓고 볼 때, 위기가 오더라도 정부 개입이 예상되는 만큼,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거나 길진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기화되는 고금리 위기…"자금조달·투자 온기 이어져야"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급의 문제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계속되는 금리인상을 크게 우려했다. △부채증가 △기업들의 자금조달 악화 △소비·투자 악화 등이 대표적이다. 

신 센터장은 "과거 카드·저축은행 사태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모두 경기침체가 동반돼 마이너스성장률을 기록했는데,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1%대를 거둘 것이라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미금 금리가 더 오르지 않더라도 (높은 수준을) 오래 지속할 경우가 문제인데, 금리를 못 내리는 상황이 지속되면 어려워지는 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유 교수도 "문제는 외환과 기업부분에서의 부채인데, 건설업과 PF 대출을 제공한 증권사 등의 리스크가 노출된다면 연계된 산업계로 위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를 비롯해 경기에 민감한 산업군을 중심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침체기를 맞게 되면, 은행에 부실이 일부 넘어갈 수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의 투자 부진은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유 교수는 "중요한 한 축인 투자부문의 경우 기업 경기전망이 안 좋다보니 최근 10억대 고액예금을 기업에서 예치하고 있다. 기업들이 돈을 안 쓰고 안전하게 가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라며 "가계·기업·정부 중 한 쪽에서 버티지 못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자영업자·취약차주 등이 거론되는 가계부채 문제는 오래 전부터 언급된 데다 금융조치 등을 통해 이연시켜 온 만큼, 큰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 센터장은 "가계는 자영업자·취약차주 이슈가 항상 있었는데 많은 부분에서 금융조치를 통해 유예시킨 부분이 있다"며 "시간이 흐르면 어려워지는 게 있을 것인데 가계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유 교수도 "가계부채가 우리경제의 구조적 위험요인인 것은 맞지만, 예전부터 얘기를 해왔고 나름 대응할 수 있는 리스크이다"면서도 "근본적 위기는 경제가 침체화되는 것이고, 침체를 야기하는 게 부채인데, 우리는 많은 부채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리를 계속 올리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상환부담이 늘어나고 자산가격은 더욱 하락하길 기대하는 시장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롭게 부상하는 '퍼머 크라이시스'…사회적 비용 증가 우려

가시적인 경제위기보다 잦은 위기로 촉발된 '위기설'이 '경제 공포'로 이어지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콜린스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 '퍼머 크라이시스'를 지면에 소개했다. '영구적인(permanent)'과 '위기(crisis)'의 합성어로, 하나의 악재가 다른 악재를 낳아 위기가 재생산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이에 대외의존형 경제인 우리나라가 위기의 상시화, 각종 불확실성으로 작은 충격에도 휘둘리는 퍼머 크라이시스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국이 50조원 플러스 알파의 유동성 지원책을 발표하고,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연내 빚을 갚겠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후속적으로 △한전채 발행 미달 △회사채 금리 급등 △기업들의 은행대출 급증에 따른 채권금리 상승 △흥국생명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콜옵션 행사 포기 등의 도미노 위기를 막지 못했다. 

유 교수는 "레고랜드 사태는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을 시장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인데,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있으니 시장을 쿨다운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작은 충격에도 누군가 움직인다 하면 뒤통수만 바라보고 따라가면서, 모두가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사태를) 수습할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생각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가계-기업-정부로) 연결된 고리 중 한 곳에서 부실이 터지게 된다면 전반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