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해외건설 명가 재건'을 꿈꾸는 쌍용건설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현장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쌍용건설은 북중미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에 위치한 아이티의 태양광 발전시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티는 현재 '무법천지'다. 갱단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는데 이를 막을 공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한 의문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수익은커녕 보안과 자재 운송 등 부대비용으로 인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글로벌세아 그룹이 판단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로 인수된 이후 첫 해외수주 프로젝트로서 그룹의 북중미 영업망을 과시하고 싶은 나머지 일방적으로 사업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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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건설이 아이티 카라콜에 건설하는 태양광 발전 사업 건설 위치도./사진=쌍용건설 |
◆무정부 상태 아이티, 무장갱단 득세에 교민들도 탈출 러시
16일 쌍용건설에 따르면 아이티 북부 카라콜에서 진행 중인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지난 7월 15일 착공에 들어갔다. 쌍용건설은 지난 1월 아이티 MEF(Ministry of Economy and Finance)가 발주한 '아이티 태양광 발전 설비와 ESS설비 건설 공사 및 운영 사업'을 수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글로벌세아 공장이 있는 아이티 북부 카라콜(Caracol) 산업 단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12㎿ 태양광 발전소와 10㎿h ESS(에너지저장시스템)을 시공하고 5년간 운영하는 사업이다. 사업규모는 5700만 달러(750억 원)다.
쌍용건설은 미주개발은행 차관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공사비를 떼일 염려는 적지만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아이티가 갱단들의 폭력으로 인해 내전 직전이기 때문이다.
아이티는 지난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피살 후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 주도 다국적 경찰력이 치안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난 4월 총리가 사임하는 등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의 80%를 점령할 정도로 세력이 강력한 갱단들은 연일 민간인들을 습격하고 있다. 국제연합(UN)인권사무소는 이달초 "지난 3일 아이티 현지 갱단 그란 그리프가 중부 퐁 손데 지역에서 시민들을 습격했다"며 "이로 인해 민간 여성 10명과 유아 3명을 포함 최소 70명이 사망했고 주택 45채, 차량 34대가 불에 탔다"고 발표했다.
현지에 거주 중인 한인 교민들에 대한 안전도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외교부는 지난 3월과 4월 총 13명의 아이티 내 교민을 도미니카 공화국 등 이웃 국가로 철수시켰다. 지난해 기준 117명의 교민 규모는 현재 60명 안팎으로 줄었다. 지난 5월 1일에는 아이티 전 지역을 여행금지(여행경보 4단계)로 지정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디어펜에 "아이티는 무장갱단이 주도하고 있는 폭력사태로 인해 치안이 좋지 않다"며 "최근 회복 기미는 있으나 단시일 내에 상황이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위험 속 공사 강행 쌍용건설…현장은 아이티인데 자재는 도미니카 항구로?
이런 상황에서도 쌍용건설은 현지에 직원을 파견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쌍용건설은 "현재 초기 인원이 투입된 상황으로 카라콜 산업단지 내 현장은 현지 경찰, 직원 기숙사 주변은 사설경호업체 2곳이 24시간 경호하고 있다"며 안전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절차에 따라 외교부에 활동 계획서를 제출, 승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이티의 입법·사법·행정이 모두 마비된 상황에서 현지 경찰 등을 신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이터에 따르면 현지 인권단체(RNDDH)는 대통령 피살부터 최근까지 20명의 아이티 경찰관이 갱단에 의해 살해됐다.
자재 수급도 난관이다. 쌍용건설은 지난달 말 국내 업체와 태양광 모듈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해당 모듈은 국내에서 생산된 뒤 현지로 보내지게 될 예정이다. 하지만 아이티에 곧바로 들여올 수가 없다. 갱단들이 아이티 내 주요 항구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쌍용건설은 자재를 도미니카 항구에 하역 후 육로를 통해 카라콜로 보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도미니카 남부의 리오하이나와 카우세도, 두 항구가 유력하다.
문제는 카라콜까지와의 운송 거리다. 약 350~400㎞를 육로로 운행해야 한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항구에서 카라콜까지와의 거리인 280㎞보다 훨씬 먼 거리다. 상당한 운임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또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적인 도미니카는 안전할 수 있더라도 국경을 넘어 아이티로 진입한 후에는 해당 자재를 호위할 인력이 필요하다.
쌍용건설은 해당 루트에 대해 "아이티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세아상역이 이용하고 있는 방법"이라며 안전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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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건설은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자재를 도미니카 공화국 항구에 들여온 뒤 아이티 카라콜까지 육로로 운반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도미니카 카우세도 항구부터 카라콜까지의 여정으로 약 400㎞ 거리다./사진=구글 지도 캡처 |
◆리스크 뻔한 사업에 발 담근 쌍용건설, 모기업 눈치 보나
업계에서는 쌍용건설의 무리한 아이티 태양광 발전 사업 강행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변수가 많은 해외건설 프로젝트에서 현지 치안 악화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한창 사업을 진행 중이라면 모를까 일부러 아이티 같은 지역에 들어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이티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사업 진행이 늦어지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 그룹 눈치를 보느라 리스크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쌍용건설의 모기업 글로벌세아는 지난 2022년 말 쌍용건설 인수 당시 '해외건설 명가'라는 쌍용건설의 옛 타이틀을 되찾아오겠다고 공언했다. 김웅기 회장은 지난해 10월 쌍용건설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 "쌍용건설이 누렸던 옛날의 명성과 영화를 되찾을 것을 약속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코스타리카·아이티 등 글로벌세아가 그동안 구축한 북중미 영업망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 첫발이 바로 아이티 태양광 발전 설비 건설 사업이다. 하지만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사업 강행으로 현지 직원들의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다.
아이티 현장의 수익성 악화부터 직원 안전 문제까지 일련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쌍용건설 관계자는 "공기에 맞춰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만 답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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