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선고 앞두고 선밸리 콘퍼런스 귀국
AI·반도체·바이오 삼각 편대 본격화
[미디어펜=김견희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17일 대법원 선고를 기점으로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내고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내는 한편, 그룹 차원의 '바이오 대전환'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가 제 2의 성장 축이자 미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4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오는 17일 오전 이 회장에 대한 부당 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상고심 선고를 내린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을 부당하게 이끌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2020년 기소됐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리수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재계에선 하급심 전원 무죄 판결을 감안할 때 대법원 역시 이 회장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번 혐의가 최종 무죄로 확정되면, 국민연금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5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재판의 쟁점이 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당한 합병'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뉴삼성' 기조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지난 9~13일(현지시간) 미국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법원 선고를 사흘 앞둔 시점에서 글로벌 경제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본격적인 '뉴삼성' 시대의 방향성을 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 밸리 콘퍼런스는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팀 쿡, 일론 머스크 등 세계 재계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비공식 다보스'로 불린다.

실제 이 회장은 2심 무죄 선고 직후부터 글로벌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기도 하다. 미국·유럽은 물론 중국에서도 비야디(BYD), 샤오미, 중국 국영 반도체 그룹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삼성전기는 수천억 원 규모의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급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또 독일 공조기기 기업 플랙트그룹(2조3000억 원)과 미국 마시모사의 오디오사업부(3억5000만 달러),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인수가격 비공개)를 인수하며 인수합병(M&A) 전략을 재개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선 밸리 콘퍼런스를 통해 글로벌 전략가들과 교류한 것은 향후 글로벌 M&A와 기술 제휴 확대를 예고하는 신호"라며 "대법원 선고 이후 '뉴삼성' 윤곽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다만 지난 10여 년간의 사법리스크를 겪은 만큼, 대외적으로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경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 일본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월 9일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재용의 다음 행보는?…삼성, 100년 산업 키운다

이 회장은 'AI-반도체-바이오' 삼각 편대를 중심으로 삼성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인 간담회에서 이 회장은 "AI, 반도체, 바이오에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뿐만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AI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으며, 이후 삼성은 자체 AI 반도체 개발 및 AI 서버용 메모리 고도화에 착수했다.

바이오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로 바이오 시장이 급속 성장했던 지난 2022년 "바이오는 반도체 이후 100년을 책임질 산업"이라며 바이오를 반도체에 이은 그룹의 차세대 성장 축으로 못 박은 바 있다. 이 후에도 바이오가 삼성의 제2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이 회장은 송도 사업장을 방문해 "바이오가 반도체에 이을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바이오가 단순 사업 확장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다. 

AI 기반 신약개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생산 자동화,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 확대 등 AI 기술과 바이오 제조 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 모델이 삼성 내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현재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세계 최대 생산능력(78만 리터)을 확보하고 있으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시장에도 진출하며 CDMO–신약개발–플랫폼 기술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5월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분할해 각각 모회사·자회사 체계를 재정비했다. 바이오에피스는 새로 신설되는 지주사 삼성에피스홀딩스 산하로 편입돼 보다 유연한 사업 전개가 가능해졌다. 기업이 가진 고유한 특수성을 더욱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 개편과 현장 경영을 지켜본 시장에선 바이오 분야에서도 대규모 글로벌 M&A가 조만간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뉴삼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다음 100년을 책임질 '바이오 초격차' 전략이 글로벌 산업 지형을 어떻게 바꿔 놓을 지에 업계 내 관심이 쏠린다. 

재계 내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몇 년 전부터 바이오를 '100년 산업'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전략 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단 이후 그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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