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관세 또는 현지 생산 압박
메모리 전략 수정 가능성 '주목'
[미디어펜=김견희 기자]'관세 카드'를 앞세운 미국의 반도체 팹 건설 요구가 파운드리에서 메모리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향후 전략을 놓고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다만 아직 확정 관세가 아닌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적절한 대응을 이어나가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시장의 분석이 나온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19일 업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뿐"이라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지 않는 메모리 기업에 대해 사실상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한국 상품에 대한 15% 관세라는 무역 협상을 타결했지만,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협상 문서에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적용한다'는 조항은 얻었다. 하지만 대만 등 경쟁국 대비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모든 국가에 일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실질적인 방어 장치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만약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고관세가 확정된다면, 국내 기업들은 메모리 미국 현지 생산을 검토해야하는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메모리는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에서 미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둔 마이크론이 향후 시장에서 유리한 구도를 갖게될 확률이 높다.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주와 뉴욕주에 대규모 메모리 팹을 추가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현지에 메모리 생산시설이 없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370억 달러(한화 약 54조 원)를 들여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팹을 짓고 올해 가동을 앞뒀다.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한화 약 5조8000억 원)를 투입해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산업 구조상 단기간 내 미국에 대규모 제조 팹을 짓는 방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메모리는 공정 효율과 원가 경쟁력이 핵심인 만큼, 삼성전자는 평택·화성,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 등 기존 국내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정을 둘러보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왼쪽)./사진=SK 제공


다만 기업 생존을 위해 수익성 높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미국 현지에 두는 게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건설 중인 용인 클러스터를 차세대 메모리 연구개발(R&D)과 레거시(구형) 제품을 생산하는 기지로 두면서,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라인은 미국 테일러로 배치한다는 전망이다. 

이 경우 향후 미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통제력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HBM과 AI 반도체 라인을 미국에 둔다고 해서 반도체 주권을 당장 잃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수익성 높은 핵심 라인이 장기적으로 해외에 고착될 경우 기술 축적과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주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결국 기업들이 '이원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령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계획한 반도체 팹 6기 중 일부만 테일러 공장으로 배치하는 식이다. 현재 중국과 대만 등으로 수출되는 국내 반도체 물량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메모리 수요에 맞춰 제한적으로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전략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이 관세 협상 카드를 꺼내들 때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처해나가겠다는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든 파운드리든 정책 환경 변화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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