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14)-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으로의 초대
포르피리오스(234?~305) 『이사고게(Isag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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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가 필수적인 도구가 된다. 어떤 실체나 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만약 동일한 대상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식과 표현의 내용이 다르다면 반드시 상호 인식의 오류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서술되는 내용의 뜻과 범위를 명료하게 한정지을 수 있고, 이를 누구나 인지할 수 있을 때 의사소통은 원활해 질 것이다. 더구나 일상적 소통을 넘어 체계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사물과 현상의 이름과 뜻, 범위에 대한 공통의 인식 기반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렇듯 일상의 소통과 학문 연구에서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것이 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년~BC 322년)는 이 논리학의 창시자다. 그의 논리학은 철학적 사유의 도구 노릇을 한다고 해서 '오르가논'(Organon)이란 이름이 붙었다. 논리학은 제 학문을 준비하는 학문, 즉 예비학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문의 아버지'로 불린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창시해 낸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는 제 학문을 개척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인식 도구들의 의미와 범주, 그리고 서술의 논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궁구해냈던 것이다.
그 결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의 저서로 <범주들(Categoriae)>, <명제에 관하여(De interpretatione)>, <앞 분석론(Analytica priora)>, <뒤 분석론(Analytica posteriora)>, <변증술(Topica)>, <소피스트적 논박(Sophisticielenchi)>을 저술했다. 후대에 이 저작들이 묶여 ‘오르가논’이라 일컬어졌다.
첫 번째 저서 <범주들>은 사물 또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한 실체(ousia)들의 개념을 여러 개의 독립된 단어들로 범주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사물을 일컫는 낱말들은 인식과 표현을 위해 앞서 규명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사물들의 이름과 뜻을 정확히 한계지음으로써 사물들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표현해 낼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들>에서 낱말들이 서로 결합된 상태와 결합되지 않은 상태로 서술되는 명제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이 그의 철학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범주들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부하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여러 철학자들이 그의 <범주론>을 주석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300년 전후 포르피리오스(Porphyrios, 234?~305)가 쓴 <이사고게(Isagoge)>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철학 입문서로 각광을 받았다. <이사고게>는 12세기 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와 더불어 삼부작을 이루어 '구 논리학(logica vetus)'으로 불릴 만큼 천년 이상 중세 서양에서 논리학과 철학의 입문서로 높이 평가되었다.
<이사고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의 주석서이자 논리철학의 입문서다. '이사고게(isagoge)'라는 단어 자체가 '이끎', '도입'의 뜻을 가지므로 입문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포르피리오스는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유(類), 종(種), 차이성(差異性), 고유성(固有性), 우연성(偶然性)의 개념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상술하고 있다.
유(類, genos)란 무엇인가? '무리'를 뜻하는 게노스는 "어떤 하나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정하게 얽힌 것들의 모음"이다. 유는 자기 아래에 놓인 다수의 것들의 근원이 된다. 유는 쪼갤 수 있는 개별적인 것들을 포괄한다.
종(種, eidos)은 각 사물의 모양에 대해 말해지는 것들이다. 종은 유 아래에 놓인다. 이를테면 ‘동물’은 유이며, 이에 속하는 사람과 소와 말은 종이 된다. 종은 어떠한 고유성을 가진 '꼴'로 특징지어지는 묶음이다. 사람은 유인 동물의 아래에 놓이는 종이다. 유는 오직 하나에 대해 서술되지만, 종은 종들 간의 차이성과 고유성에 따라 여럿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같은 유에 속하는 동물 사이에도 이성 능력을 갖고 있느냐 여부에 따라 사람과 다른 동물의 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종은 그 아래에 다양한 개별자를 갖는다. 동물 아래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낱낱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종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 즉 개별자에 대해 서술된다.
차이성(差異性, differantia)은 "공통적으로, 고유하게, 그리고 아주 고유하게 말해지는 것"이다. "자신과 얽혀지든 다른 것에 얽혀지든 다름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를 때, 하나가 다른 하나와 공통적으로 차이 난다고 말해진다." 다른 종을 만들어내는 고유하게 있는 차이성은 '종차(種差, specifica differentia)'가 된다. 다양한 종차에 의해 새로운 범주로 구분되는 것들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동물의 유에 속하는 사람과 소는 이성 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의해 질이 다른 종으로 갈리게 된다.
"차이성은 종에서 차이가 나는 여럿에 대해 이것들이 어떠한 질의 것인지를 묻는 물음에서 서술되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성에 의해 각각의 종들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사람과 말은 유에 따라서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이성 능력이 있음'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고, '죽음'의 잣대로 비교할 때 사람과 신은 구분된다.
고유성(固有性, proprium)은 특정한 종에만 딸려 있는 것이다. '웃을 줄 앎'의 특질이 사람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게 한다. 우연성(偶然性, accidens)는 "생겨나 있다가도 그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 파괴됨이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연성은 본 바탕에서 떼어낼 수 있는 것과 떼어낼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이를테면 동물들이 ‘잠을 잠’은 떼어낼 수 있는 우연성이지만, 까마귀와 에티오피아인에게 '검음'은 떼어낼 수 없다. 이처럼 우연성은 같은 것에 들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포르피리오스는 유, 종, 차이성, 고유성, 우연성의 다섯 가지의 요소의 공통점과 각각의 차이성을 설명한다. 유와 차이성이 종들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면, 유에 고유한 점은 차이성과 종, 고유성과 우연성보다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서술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동물'은 사람과 소나 말, 새와 뱀 모두에 적용되지만, 각 종의 차이점인 '네 발 달림'은 네 개의 발을 가진 소나 말 등에 적용되고, '히힝 거림'은 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는 차이성을 가능 상태로 포함하지만, 차이성들은 유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또 유는 종들을 포함하지만 종들은 유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유는 차이성들에 의해 종들로 구분되고 종들은 각각의 고유성과 차이성에 의해 질이 다른 종으로 나뉜다. 종은 차이성과 우연성에 의해 다양한 특질의 개별자(individuum)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최상위의 유는 하나의 실체(substantia)이다. 여기서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으로 나뉘고, 물질적인 것은 몸(물체)을 구성하고 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혼이 있는 몸을 가진 것이 생물이다. 생물은 감각 능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고, 감각 능력을 갖춘 것은 동물을 구성한다.
동물은 이성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성에 따라 사람과 다른 동물들로 나뉜다. 이성 능력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각각 개별자이다. 여기서 '이성 능력이 있음'과 '이성 능력이 없음'은 보편자(universale)이다. 이러한 유와 종의 구성과 나뉨의 범주 관계를 나무의 형태로 표현해 낸 것을 흔히 '포르피리오스의 나무(arbor porphyriana)'라 일컫는다. 일명 '보편자들의 나무(普遍樹. arbor universalium)'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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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피리오스의 나무 |
포르피리오스의 <이사고게>는 다섯 가지 개념의 의미와 범주, 그리고 상호 관계가 만들어내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와 종을 존립하게 해 주는 개념과 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저자는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인지, 아니면 어떤 상태인지를 묻느냐에 따라 유와 종의 고유성과 차이성, 우연성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또 다섯 가지 개념들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관계와 명제들이 어느 때 성립 가능하고, 어느 때 성립 불가능한지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유와 종은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포르피리오스는 스스로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유들과 종들이 그 자체로 존립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생각들 안에만 개념으로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유보하고 있다. 하지만 유와 종,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개념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의미 범주 등 논리학의 기초적인 설명들은 잘 전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을 비롯한 논리학 시리즈에 입문하기 전에 꼭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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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이사고게>, 포르피리오스 지음, 김진성 역주, 이제이북스(2005), 118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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