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18) 사랑받으려면 지혜로운 자가 되라
플라톤(BC 427~347년) 『뤼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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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사랑받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할까. 사랑받을 때 느끼는 기쁨과 행복에 익숙한 사람은 상대의 열정의 변화에 민감할 것 같다. 반면 누군가를 사랑함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사랑의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키워냄으로써 외로움을 더 잘 이겨낼 것 같다. 동등하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불균형적일 수 있다.
아무튼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쁨과 행복은 늘 상대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더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아닐까싶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 간에는 늘 사랑의 갈증을 느끼고 자신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게 통례가 아닐까. 하지만 친구와의 사랑, 부모와 자식과의 사랑,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에서는 사랑을 쏟는 데에서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에서 이기적이기 십상인 인간이 친구, 부모, 가정, 사회, 국가로 확대되는 사랑에서는 이타적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타적 사랑을 보다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은 분명 에로스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 사랑일 것 같다. 플라톤은 이를 에로스(eros)와 필리아(Philia)로 구분했다. 필리아는 사랑보다 우애(友愛), 친애(親愛)로 부를 때 의미가 보다 명확하게 구분된다. <뤼시스(Lysis)>는 사랑의 조건에 대한 플라톤의 철학이 담겼다. 특히 플라톤은 남녀 간의 사랑보다 필리아가 형성되고 필리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에로스나 필리아에는 반드시 상호성이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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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좌상, 아테네 학술원 앞 |
플라톤은 필리아를 유용성에 기초한 필리아, 즐거움에 기초한 필리아, 훌륭함에 기초한 필리아로 구분한다. 사실 스스로 즐겁고 상대의 훌륭함에 매료되어 쏟는 필리아라면 특별한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을 듯싶다. 우애(친애)가 자발적으로 솟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는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플라톤이 유용성에 기초한 필리아의 선결조건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용성에 기초한 필리아를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필리아로 보았다. 무언가 자신에게 유용할 경우에 우애(친애)가 발휘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을 계산적 사랑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 역시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 역시 즐거움과 훌륭함 그 자체에 친밀감을 느껴 우애(친애)가 우러나오는 경우를 최상의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플라톤은 인간의 내면에 숨은 이기적 본성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필리아의 첫 번째 생성 조건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무엇인가가 되어주는 것에서 찾은 것 같다. 플라톤은 어떻게 상대에게 소중하게 여겨지고 사랑받을 수 있는 지 그 조건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은 여럿이 있다. 우선 "신은 비슷한 자를 비슷한 자에게 이끈다"는 말처럼 누군가에게 비슷한 경우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주 '훌륭한 자'끼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서로를 존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훌륭한 것의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우애(친애)를 낳는 사랑의 조건은 상대에게서 무엇인가 얻으려는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받으려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유용한 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유용하기 위해서 가장 긴요한 일은 무엇일까? 플라톤은 필리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 자신이 '앎을 가진 자', 즉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필리아를 주는 사람에게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플라톤이 강조한 지혜는 사랑받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닐 듯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대로 유용성에 기초한 필리아가 저급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녀 간의 에로스와 달리 보다 느슨하고도 확대된 사랑의 형태인 필리아의 경우 어느 정도 유용성에 기초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인 듯싶다.
<뤼시스>에서 플라톤은 필리아의 완벽한 형성 조건을 확언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여러 가지 필리아의 조건들을 탐색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아포리아(aporia)로 끝맺고 있다. 플라톤은 에로스와 필리아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논의의 실마리만 풀어놓고 독자들에게 각자의 해답을 찾아보도록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리아가 유용성에 기초하여 형성되므로 상대에게 유용한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면 필리아를 받기 어렵다는 플라톤의 명제는 결국 시론(試論)이 된 셈이다.
친구와 이웃, 부모와 가족에게 사랑받고, 사회와 국가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기보다,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 되는 게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듯싶다. 물론 계산적 필리아일 수 있지만, 이는 무엇인가 유용한 것을 바라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스스로 '앎을 가진 자', 지혜로운 자가 된다면 그 자체로 훌륭해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훌륭함에 기초한 필리아, 즐거움에 기초한 필리아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플라톤이 유용성에 기초한 필리아를 논의한 이유는 사람들을 더 나은 필리아로 인도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수신(修身)의 실천적 방법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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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뤼시스(Lysis)』,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2008, 2쇄), 152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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