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금융당국이 자율화 방침 1년 만에 은행권 수수료 체계를 점검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업계에 한바탕 파장이 일었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수익성 악화의 유일한 대안으로 손꼽히는 수수료 정상화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 당국은 서둘러 '점검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권 수수료 체계 점검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수료 인상 움직임이 시작돼 특히 지난 4‧13 총선 이후 가속화 되고 있다고 보고 수익 추구가 지나친 면은 없는지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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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자율화 방침 1년 만에 은행권 수수료 체계를 점검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업계에 한바탕 파장이 일었다. 당국은 서둘러 '점검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미디어펜 |
이날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해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국 한 관계자는 "결정된 사항이 아무 것도 없는데 보도가 나갔다"며 조만간 수수료 체계 점검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 내용을 부정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정식으로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금리-수수료 등 가격변수는 은행권 자율 판단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라며 "점검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시중은행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언젠가 수수료 문제로 한 번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면서 "은행권 상반기 실적이 좋게 나온 부분이 오히려 당국의 제재를 받게 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심리가 업계에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시중 4대 은행들은 구조조정 등 최근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호실적을 기록한바 있다.
문제는 당국이 제재에 나설 경우 스스로의 말을 부정하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점이다. 작년 8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은행에 자율성을 주겠다"며 '수수료 자율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년 여름부터 씨티은행 등이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타행 송금 수수료 등을 조금씩 올려왔다.
올해 들어 잠시 주춤했던 수수료 인상 움직임은 4‧13 총선 직후 다시 시작됐다.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국민은행 등이 송‧예금, ATM, 외환 관련 수수료를 차례로 인상했다. 금융소비자원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공공성을 생각해야 할 은행들이 수수료 인상이라는 너무 손쉬운 카드를 이용해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시킨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업계는 수수료 인상을 수수료 '정상화'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현재의 수수료 체계가 은행에게 너무 불리하게 돼 있다는 인식이다. 특히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을 갱신하는 상황에서 예대마진으로 대표되는 순이자마진(NIM) 추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수수료 인상 밖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지만 여론이 워낙 좋지 않아 그마저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항변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업계의 수수료 정상화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자율화 방침을 깨고 수수료 정상화 움직임에 당국이 제동을 건다면 업계로서는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아직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시중은행으로서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이 가운데 은행 수수료 인상은 '기업금융'에 대해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작년 개최된 한 정책세미나에서 "2014년 말 기준 예대마진과 무관한 비이자이익 비중이 미국의 경우 37.0%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9.1%에 불과하다"면서 새로운 수수료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서민에게 충격을 주는 가계금융 관련 수수료보다 기업금융 관련 수수료부터 현실화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필연적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게 마련인 만큼 가계금융 수수료 인상은 후순위로 미루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다.
외환송금수수료의 경우를 보면 기업고객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수수료 수준은 외국계 은행의 25∼50% 수준에 불과해 우선순위 측면에서도 기업금융 수수료부터 손을 대는 게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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