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28)-공화정의 수호자 키케로의 연설술
키케로(BC 106~BC 43) 『설득의 정치』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으며,
착하다고 말 잘하는 것은 아니고,
말 잘한다고 착한 것은 아니며,
지혜롭다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많이 안다고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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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노자의 말이다. 인간에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꾸미는 말보다 믿음직한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구절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최고 연설가였던 키케로만큼 이 말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이를 국가 경영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이도 드물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변론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아름다운 말로 치장된 말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 신랄한 비판과 가혹한 조롱, 때로 심금을 울리는 감성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변론은 로마 공화정에 대한 경의와 숭상의 마음을 바치며, 국가 발전에 헌신해 온 자부심을 절절이 담고 있다. 그는 숱한 변론문을 남겼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54편에 불과하다. 이 책은 그 가운데 일곱 개를 선별하여 전문을 감상하도록 묶었다. 나머지 모두 완역 소개될 날을 기다려본다.
키케로는 변론의 이론과 기법을 담아 『수사학』을 펴냈고, 변론가가 갖춰야할 자질과 역량에 대해 대화를 나눈 『연설가에 대하여(De Oratore)』를 저술했다. 키케로는 변론술을 로마 공화정에 어울리는 시민적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가 완벽한 변론을 위해 정진했던 것은 완벽한 인생을 추구하던 자신의 삶의 지향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키케로가 존속 살해의 누명을 쓴 동료 정치가 로스키우스를 위한한 변론, 선거 부정으로 기소당한 친구 무레나를 위한 변론, 그리고 정당방위로 정적을 살해한 밀로를 위한 변론 등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던 사람들에 대한 변호 연설이 담겼다.
법정의 연설은 단순한 자기주장이 아니다. 재판에 회부된 피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갖가지 증거와 정황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해야 한다. 일단 피고의 변호인으로서 소송을 맡는 변론가는 원고 측의 위협과 방해뿐만 아니라 스스로 두려움을 견디어 내야 한다.
키케로는 다른 변론가가 회피하는 소송의 변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보자. 섹스투스 로스키우스의 존속 살해 사건의 경우 소추인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쥔 장군 술라의 측근인 크뤼소고누스였다. 따라서 승소 가능성 여부를 떠나 피고의 변론에 나서는 것 자체가 술라에 맞서는 형국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키케로는 정치적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이 사건을 자청해서 맡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고한 자를 중죄로 고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정의감의 발로였다.
이 사건에서 키케로는 로스키우스가 부친을 살해가 동기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그의 평소의 삶의 태도와 행적을 들어 소명한다. 반면 살인을 공모하거나 사주한 사람들의 흉악한 행동, 범행이 저질러질 즈음의 알리바이, 그리고 로스키우스의 부친 사후에 공모자들이 신속하게 재산을 강탈해 간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무죄를 이끌어낸다. 키케로는 이 사건의 승소이후 술라의 보복이 두려워 건강을 핑계로 로마를 떠나 아테네로 피신했는데, 술라가 사망한 이후인 기원전 77년에야 로마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키케로가 얼마나 위험한 소송을 맡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칠리아의 양민을 수탈한 총독 베레스를 탄핵하고, 훗날 자신을 살해하는 안토니우스를 탄핵하는 연설은 죽음을 무릅쓴 키케로의 용기와 기개, 정의를 바로세우고자 하는 단호한 결기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키케로는 이 두 사건의 변론 준비 및 변론과정에서 갖가지 위협과 고초를 겪는다. 베레스는 키케로의 탄핵을 막기 위해 뇌물을 써서 그의 선거를 방해하거나 재판을 연기시키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법무관을 통해 재판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 삼두정치의 한 사람으로서 최고의 권력가로 부상한 안토니우스 또한 키케로의 탄핵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으려했다. 키케로는 원로원과 민회를 무력화시키는 안토니우스의 전횡을 탄핵하려 했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협박성 발언을 하고 동료 집정관 돌라벨라와 원로원 의원들을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여 키케로와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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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케로 흉상, 1세기 중반 작품,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박경귀 |
키케로는 이에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것도 무려 14차례나 지속되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연설은 그 가운데 하나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 생존 시 제정되었던 갖가지 법률을 무효화 시키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친민중적 법률들을 제정하는 전횡을 질타했다. 안토니우스의 행위가 법률의 안정성을 해치고 법률을 형해화시키는 점을 탄핵한 것이다.
키케로는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붕괴시킬 야심을 갖고 있다고 보고 그와 맞섰었다. 하지만 비록 정적이었지만 카이사르가 제정했던 법률 가운데 합리적인 법률들은 존중하는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 시기부터 적용되어 온 대리 법무관의 관할 속주 임기를 1년으로, 또 대리 집정관의 관할 속주는 2년의 임기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법률 같은 경우 공익에 부합되는 적정한 법률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카이사르가 제정한 이런 법률들을 안토니우스가 사적 목적을 갖고 파괴하는 상황을 키케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키케로는 안토니우스가 백인대장으로 구성된 30인회라는 집단을 만들어 재판의 심판인이 되도록 한 법률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이 재판의 품격을 저하시키고 비천하고 가혹한 재판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특히 키케로는 안토니우스가 유죄판결을 받은 자들이 원하는 경우 다시 민회에 상소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의 부당성을 들어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는 전형적인 친민중적 법률로 사법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회에 상소를 허용함으로써 소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실상 피고인에게 매수된 대중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소추하기 어렵게 된다. 게다가 심판인 역시 유죄판결을 내렸다가 다시 피고인에게 매수된 대중에게 끌려 나갈 위험성까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순히 상소권 부여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키케로는 로마 대중의 변덕과 광기를 익히 목도해온 터라, 대중에게 최종심을 맡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드는 안토니우스의 개정 법률을 극력 반대했던 것 같다. 특히 민회에 상소권을 부여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관련된 두 개의 사문회(査問會)가 사문화(死文化)되는 것에 경악했다. "젊은이들로 하여금 난동꾼, 반도(叛徒), 위험 시민이 되기 원하도록 조장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특히 키케로는 사문회의 폐지로 호민관의 광기가 초래할 국가적 재앙을 경고했다. 속주에 관한 법률, 재판에 관련된 법률은 자칫 국기를 흔들 수 있는 만큼 무분별한 폐지와 신설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키케로의 이런 충정어린 연설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우스 탄핵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삼두정치의 거센 물결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오히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 세력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선포되고, 결국 옥타비아누스의 묵인 아래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격에 의해 자신의 별장에서 살해된다. 키케로에게 탄핵을 당했던 안토니우스는 키케로에게 처참하게 복수했다. 그는 키케로의 손을 절단하고 목을 잘라 로마광장에 효수(梟首)했다. 이렇게 공화정을 지키려던 키케로의 분투는 수포로 돌아가고 로마는 제정(帝政)시대로 접어든다.
키케로의 안토니우스 탄핵 연설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 셈이 되었다. 키케로 또한 그 위험성을 몰랐을 리 없다. 누구도 안토니우스의 세력에 대항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키케로는 용감하게 나섰고 안토니우스의 전횡을 단호하게 탄핵했다. 키케로는 원로원의 권위와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집정관 역임자이자 원로원 의원으로서 스스로 “일종의 불침번을 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자신의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결코 회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키케로의 연설들이 냉철한 법률가, 그리고 불굴의 기상을 가진 정치투사의 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시인 아르키아스의 로마 시민권 자격을 승인해 달라는 변호 연설은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을 지극히 애호했던 인문학자로서의 키케로의 품격과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문화적 안목을 잘 보여준다. 키케로는 로마인들의 교양을 높여주는 탁월한 그리스 예술인들을 자유민으로 받아줄 것을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로마 최고의 변론가인 키케로의 변론은 당대의 법률과 사회문화적 환경과 관습, 정치적 상황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특히 변론의 구성 내용을 차분히 읽어나가면 심판인을 설득하는 키케로의 탁월한 소통 능력은 물론, 증거에 입각한 사건의 추리와 해석, 그리고 때로 감성에 호소하며 심판인을 쥐락펴락하는 변론 내용에 감탄하게 된다.
로마의 재판은 현대식 죄형법정주의에 의한 판결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자유심증주의에 의한 재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변론가의 치밀하고 객관적인 증거 제시 못지않게 소추인과 심판인을 설복시킬 수 있는 정황 증거의 제시와 냉철한 규범 인식을 토대로 한 설득적 변론의 중요성이 매우 컸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키케로의 변론이 당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변론의 탁월성을 웅변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마 공화정에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 원로원과 민회의 화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키케로는 치밀한 법 지식과 깊이 있는 인문적 지혜, 능숙한 수사학적 기법을 무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의 변론 하나 하나 현대의 법정에서 구술되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매우 품격 있는 변론들이다.
이를 체감하기 위해 눈으로만 읽지 말고 실제 변론하듯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토니우스를 탄핵한 변론의 몇 대목을 큰 소리로 낭독해 보라. 키케로 변론의 탁월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당시 키케로의 음정과 고저, 그리고 격정이 온 몸에 전이된 듯 빨려 들어오고 전율이 느껴질 것이다. 저급한 선동에 숙달된 정치인이 판치는 우리 사회에 논리와 지혜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갖춘 이만큼 능변가가 나올 수 있을까?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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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설득의 정치』, 키케로 지음, 김남우 외 옮김, 믿음사(2015), 391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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