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27)-영혼불멸을 부정한 과학적 합리주의
루크레티우스(BC 96?~BC 55)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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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인류 역사상 고대 그리스인만큼 인간의 실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들도 없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본성 규명에 나섰다. 밀레토스의 탈레스(Thales, 기원전 624~545)를 비롯한 자연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자연을 탐색했다.
그들은 인간 주변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자연 현상들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과정을 궁구했다.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기원전 540?~480?), 크라조메나이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 아크라가스의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0~435), 밀레토스의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기원전 460?~370?), 아테네의 에피쿠로스(Epikuros, 기원전 341~BC 270)가 대표적인 자연철학자들이다.
그들에게,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변화하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들에겐, 삶의 유전과 무관하게 천체가 영속하며, 하늘과 바다가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것이 이상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와 별자리의 이동, 태양과 별의 솟고 짐, 바닷물의 조수의 간만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유한한 생명을 가진 온갖 동물과 식물에 대한 관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만물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현상에 대한 의문은 세상을 주관하는 신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천지와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고 자연의 모든 질서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사회적으로 널리 유포된 고대사회에서, 자연만물에 대한 의문은 엄청난 용기와 지독한 탐구정신이 없으면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한 구성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과 사물 사이를 관통하는 만물의 생성원리와 작동원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보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물을 지녔기 때문이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불, 흙 네 가지 원소가 만물을 형성하며, 이들 원소간의 결합과 분리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고 갖가지 자연현상이 발생한다고 여겼다.
모든 생명체는 이 네 가지 원소의 혼합 비율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질을 지닌 생명체가 되며, 각자가 갖고 있는 원소로 외부를 지각한다고 생각했다. 탈레스는 진화적 관점도 보여준다. 햇빛이 땅에 비추어 생물들이 생겨나고 처음에 불완전한 형태에서 점차 완성된 형태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기원전 7세기에 이런 인식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같은 시기 동양에서는 자연을 그저 숭배나 관조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이었음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렇다.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은 타오르는 금속 덩어리로 보았다. 또 만물은 동질의 작은 물체가 합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만물 속의 지성(nous)이 운동의 근원이라고 여겼다. 그 역시 흙, 불, 물, 공기를 물체를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인식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만물은 무한히 다양한 원소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만물의 종자(種子), 즉 스퍼마타(spermata)라 불렀다. 네 가지 원소의 경우에도 종자의 종류, 우세나 열세의 여부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엠페도클레스의 견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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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나이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헤카톰베도스의 한쪽 페디먼트의 오른쪽을 장식한 조각, 헤카톰베도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지기 이전인 기원전 6세기경에 있었던 오래된 신전이다. 세 개의 인간 몸통을 하고 뱀의 하반신을 가진 기묘한 신령의 모습이다. 표정이 매우 자애롭다. 이들은 각각 자연의 세 가지 상징요소인 물, 불, 공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고 한다. 천지 창조의 근원을 말해주는 듯하다. ⓒ박경귀 |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시원을 원자(atom)와 공허로 보았다. 그는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며, 원자의 크기와 수도 끝이 없으며, 이들의 합성물이 불과 물, 공기와 흙을 생성한다고 보았다. 네 원소 자체가 원자들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특히 만물은 필연에 의해서 생성 소멸되므로, 인간이 만물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미신, 그 밖의 어떤 정념에 의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혼(마음)이 안정된 상태가 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선각 자연철학자들보다 약 1세기 후에 등장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을 계승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만물의 근원인 원자의 존재를 중시했다. 다만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직선적’ 운동에 의해 만물이 생성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자의적' 운동을 주장했다.
루크레티우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계승했다. 그는 사물들은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치명적인 분해가 없이는 결코 분리되거나 따로 떼어내질 수 없는" 항구적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에 늘 원자가 존재한다. "어떤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고, 모든 것이 분해에 의해 질료의 알갱이로 돌아간다." 어떤 것도 무에서 생기지 않고 아무것도 무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그 시간과 지나가버린 세월에 그것들로부터 사물들의 이 총체가 재생되어 유지된 그런 것들이 있었다면, 그것들은 확실히 불멸의 본성을 부여받은 것들이다." 사물의 형상이 어찌되었든 그에 내재된 원자는 필멸이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을 보다 치밀하게 전개한다. 어떤 물체도 완전히 빈 공간은 없으며, 견고한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원자가 지니는 '견고한 단순성'이다. 또한 사물들은 무한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 원자들은 견고하며 영원하다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단일론을 반박한다. 열기의 조밀하거나 희박한 부분의 속성을 가진 불로부터 어떻게 다양한 사물이 생성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한 4원소론 역시 비판한다. 엠페도클레스는 불이 공기의 바람으로 변화하여 비가 생겨나고, 비로부터 흙이 생성되며, 흙으로부터 습기가, 이어서 공기가, 그 다음에 열기가 되어 서로 변화 간에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이전의 사물이나 형태에서 다른 것으로 변화해 가는 것은 곧 이전에 있었던 것의 소멸을 의미한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는 모든 사물들이 완전히 무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변치 않는 것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루크레티우스 역시 '결코 변화할 수 없는 다른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사물들이 4원소 이외에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아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4원소설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물이 다양한 원소를 지니고 있으면서 두드러지게 배치된 하나의 원소가 그 사물의 특징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여긴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에 루크레티우스가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 속에 사물들이 섞여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여러 사물에 공통된 원소들이 사물들 속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섞여 숨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보자. 숲의 나무가 부딪혀 불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무들 속에 불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루크레티우스는 나무가 불의 원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공간에 있던 열기의 원소들이 마찰에 의해 함께 흘러 모여서 화재를 낳았다고 본다. 만일 숲 속에 이미 만들어진 불길이 감춰져 있었다면 불들은 한순간도 숨은 채로 있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무한한 우주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공간과 사물을 채우고 있는 원자의 수는 무한하다. "물체는 빈 공간에 의해서, 그리고 빈 공간인 것은 다시금 물체에 의해 한정되도록 강제한다." 루크레티우스는 무한한 공간에 있는 무한한 사물의 기원들이 "현명한 정신에 의해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며, 아낙사고라스의 지성(nous)이 운동의 근원이라는 입장이나 혹은 창조설을 은근히 비판한다. 그는 만물이 무한한 시간으로부터 타격에 동요되어 변형되고 요동하는 운동과 모임을 시험한 끝에 마침내 조화로운 운동 속으로 진입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자들의 생성과 파괴의 균형이 자연의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사물의 기원은 어떤 운동에 의해 생성을 일으키는 질료의 몸체들이 여러 가지 사물들을 낳으며, 생겨난 것들을 다시 분해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만드는 핵심 동인은 원자다. 원자는 쉼 없이 운동하며 여러 밀도를 가진 사물들 속에 결합되어 있거나 허공을 떠돌아다니며 충격에 의해 여러 사물들로 이동한다. 이러한 원자의 '자유의지'에 의해 동식물이 생겨난다.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이 품고 있는 원자들의 형태 또한 다양하다고 추론한다. 뜨거운 불과 차가운 서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체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것을 예로 든다. 이는 각각의 사물들이 다른 형태의 원자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결국 사물의 속성을 좌우하는 것은 품고 있는 원소의 특성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원소들의 모임, 운동, 순서, 놓임새, 형태가 바뀔 때 사물들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자연과 사물들이 "자체가 스스로 자기 뜻대로 신들 없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에 기원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요한 평화로써 평온한 세월과 잔잔한 삶을
보내는 신들의 신성한 가슴에 걸고 묻노니,
대체 누가 측량할 수 없는 것의 총체를 다스릴 수 있으며, 누가 손 안에
심연의 강력한 고삐를 통제력 있게 지닐 수 있으며,
누가 모든 하늘들을 균일하게 돌리고, 모든
땅들을 천상의 불들로써 열매 맺게 데우거나,
모든 장소에 모든 시간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사물의 본성을 원자들의 운동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 만물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비판하는 이러한 루크레티우스의 견해는 아낙사고라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적 관점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물의 본성을 탐색한 루크레티우스의 관심은 영혼의 본성으로 나아간다. 사물의 근원이 원소의 운동에 기인한다면, 정신과 영혼은 인간의 부분으로서 인간의 육신을 지배하는 본성을 구성한다. 루크레티우스는 영혼이 정신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육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서 영혼은 육체적 본성으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감각적 접촉에 의해서 정신과 영혼의 작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의 영혼이 전 육체를 지배하기도 한다. "육체나 정신의 능력이 분리되어 스스로 각자가 다른 쪽의 힘없이도 감각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함이 분명하며, 오히려 그 능력들 간에 양쪽에서 유래한 공통적 운동에 의해 우리의 감각이 살들을 두루 통해 불붙어 퍼져 나간다." "하지만 영혼이 떠나가면 육체는 완전히 감각을 잃는다." 루크레티우스는 "영혼의 힘보다는 정신이, 생명을 붙잡아 두는 데 더 중요한 빗장이고, 삶을 위해 더 중심적인 것"으로 여겼다.
루크레티우스는 영혼과 육체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면서 영혼불멸설을 반박했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아서, 인간의 지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면 더 빨리 원초적 물체들로 분해되고 만다는 것이다. 즉 육체가 무너지고 사라지면 영혼의 모든 본성도 분해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다. 인간이 질병에 의해 고통 받으면, 영혼과 정신 또한 혼란스럽거나 방황하게 된다. 육신이 더욱 쇠진해지면 인간의 감각의 본성과 정신도 따라서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육체와 마찬가지로 영혼 또한 필멸의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성이 불멸적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서도 감각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오감까지 부여받은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하지만 눈도 코도 손까지도 분리된 채로는, 영혼을 위해 존재할 수 없으며, 분리된 혀도, 귀도 그렇다. 그러므로 영혼들은 자체로서는 감각을 가질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이런 기술을 토대로 볼 때 루크레티우스는 영혼불멸설을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영혼들은 스스로 육체들과 지체들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성된 육체들 속으로 다른 영혼이 이식될 수도 없다. 따라서 불멸의 영혼이 육체를 바꿀 때 변화한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이라는 입장이다.
육신이 생명을 다할 때, 영혼 역시 소멸된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리석은 것이 된다. 루크레티우스는 감각이 정지되는 죽음 이후의 영혼의 활동에 대해 전혀 두려워할 게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인식은 죽음 뒤에 신들의 징벌에 대한 인간들의 두려움이 공허한 것일 수 있음을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루크레티우스는 천체의 움직임, 태양의 빛과 열, 밤과 낮의 원인 등 다양한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신들의 주관이 아닌 자연적 운동의 결과로 설명한다. 불의 발견도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이 아닌 벼락이 만들어낸 자연 현상임을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신들이 만들어내는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것을 강조한 에피쿠로스를 존숭했다. 루크레티우스는 과학적 합리주의자였던 셈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인간들이 위대한 자연의 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길 희구했다. 그가 천체와 대기의 현상들, 지상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현상들의 전말을 논리 정연하게 기술한 것도 사람들이 갖는 막연한 공포심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당시까지 지배적 관념이었던 신학적 설명, 그리고 영혼불멸을 신봉하던 스토아학파의 견해와 날카롭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주장은 분명 물질주의(materialism)의 입장에 서 있었으니 그가 무신론자로 공격받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루크레티우스가 사물의 본성을 탐구한 것은 기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본질을 좀 더 정확히 규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며 공동체의 삶을 중시하던 당시의 풍습과 문화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천상과 지상의 현상들, 개개인의 감각과 행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썼던 것 같다. 사물의 본성과 인간의 감각과 행위들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자연계의 현상과 세상의 관습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루크레티우스가 살았던 시기는 로마의 공화정 말기로 삼니움 족의 로마 공격이 있었고,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혼란기였다. 에피쿠로스가 아테네의 퇴조기에 심신의 평정에서 오는 쾌락, 즉 아타락시아(Ataraxia)의 생활공동체에 몰두했듯, 루크레티우스 역시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원자론을 계승하며 은둔의 삶을 선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정향을 고려하면 그가 이 작품을 운율을 갖춘 시가의 형태로 기술한 것 역시 어울리는 선택인 듯싶다.
사물과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원자의 구성체로 인식한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은 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말에 재정립되는 원자론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의 맥을 이었던 루크레티우스의 과학적 안목의 탁월함에 감탄하게 된다. 물론 신학적 관념을 전복시키는 그의 유물적 세계관이 인간에게 허무감을 안겨주는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 영혼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종교와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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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루크레티우스 지음, 강대진 옮김, 아카넷(2012), 573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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