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21) 최고의 사랑의 기술은 진심이다
오비디우스(BC 43~AD 17)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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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문학의 영원한 소재요 가장 설레는 주제는 '사랑'이다. 조물주는 인간의 본능 속에 나머지 반쪽인 이성을 못내 사랑하도록 특별한 감성을 숨겨 놓았다. 그래서인지 남녀 간의 사랑은 인간의 감성을 보다 풍요롭게 완성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겨울이 아니어도 옆구리가 늘 시린 이유다.
물론 요즘 홀로 당당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외로움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자제력과 인내심이 강한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의 여부와 관계없이 보통 사람 누구에게나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갈구되거나 시도되고, 또 누릴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 본질적 욕망을 간파하고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사랑의 전도사가 있다. 어떻게 하면 사모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을 성취할 수 있을까? 오비디우스(Publius Naso Ovidius, BC 43~AD 17)가 여기에 주목했다.
그는 한편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한 게 아니다. 애절한 사랑, 추악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 엽기적인 사랑 등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등장했던 숱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사랑을 쟁취하고 지키는 방법과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도출해 냈다. 오비디우스는 에로스를 대신하여 사랑의 교사로 자처하고 나섰다.
오비디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달통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변신이야기』를 통해 올림포스 신들이 신 또는 인간들과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갖가지 동식물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엮어낸 바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의 사랑 이야기에서 사랑의 비법을 추출해 낸 것 같다.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상한 '사랑학' 강의가 아니다. 사랑을 하나의 인생의 중요한 기술로 보고, 어떻게 하면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지 그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애 기술 강의다. 자신의 경험담과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역사에 나타난 사랑의 사례를 절묘하게 엮어서 실용적인 연애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마차도 기술이 있어야 잘 몰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신 에로스도 기술이 있어야 잘 부릴 수 있다." 그가 사랑의 기술을 강조하는 이유다. 오비디우스에게 영혼의 사랑 이야기는 일단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이 책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졌다. 1권에서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을 가르친다. 오비디우스는 "건전한 사랑의 기쁨이나 허가받은 은밀한 행위만 노래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지만 실상 그가 제시하는 여자 사냥술은 경계가 없는 듯하다.
오비디우스는 그리스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만난 것처럼, 제우스가 이오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사랑의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랑을 찾으려면 여자들이 주로 많이 모이는 회랑이나 극장 주변, 경마장, 검투장을 노리라고 말한다. 각종 국가 축제나 행사, 개선행렬, 파티에서도 여자에게 접근할 기회를 만들라고 충고한다.
여자를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에 대한 충고는 더 노골적이다. 자신감을 갖고 여자에게 다가가라고 부추긴다. "여자의 정욕은 우리 남자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거의 광기에 가깝다"는 게 오비디우스의 판단이다. 사랑에 약한 여자들의 이런 약점을 파고들라는 얘기다. 오비디우스는 여자가 한번 사랑에 빠지면 남자보다 더 광적이라는 것을 신화와 전설의 사례를 들어 강조하고 있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에 빠져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재주를 빌어 암소로 위장한 목마 속에 들어가 결국 황소와 욕정을 채운 사례, 메가라의 공주 스킬레가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배신한 이야기, 메데이아가 사랑에 배신당하자 이아손의 두 아들을 살해한 끔찍한 일 등 숱한 사례를 그 증거로 들고 있다.
이런 마초(macho)적 시각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쯤 되면 여성들의 얼굴이 화근거릴 것 같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예도 많건만 여성들이 치욕스럽게 여기는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여성들을 공략하라고 남성들을 교육하고 있는 오비디우스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싶을 것 같다.
오비디우스는 작업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그가 공개하는 비법은 여성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보고 밀고 당기면서 여자의 마음을 얻는 고단수의 기법들이다. 여자의 최측근을 활용하라, 작업 걸 시점을 잘 선택하라, 선물과 편지를 자주 보내라, 남자의 외모를 관리하라, 술자리를 이용하라, 아낌없이 칭찬하라,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 먼저 여자의 입술을 훔쳐라 등등.
그가 설명하는 각각의 기법의 예는 고대 그리스의 신과 영웅들의 사랑이야기일 뿐이지만, 현대인도 당장 그 사랑의 비법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그럴듯하다. 번역자가 "2000년을 이어온 작업의 정석"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가 허장성세만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사랑을 얻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오비디우스는 제2권에서 한번 붙잡은 사랑을 지키고 잃지 않는 비법도 알려준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법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늘 부드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여성의 호의를 잃지 않도록 노예처럼 굴라고 말한다. 또 끊임없이 칭찬하고 아낌없이 선물을 보내고, 때로는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고 주지시킨다. 페넬로페의 애간장이 타도록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귀향한 것처럼.
사랑의 묘약이 없을까 고민하지 말고 여자의 질투심을 유도해서 사랑의 열정을 유지하고, 여자의 분노는 섹스로 잠재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처방하는 대목에선 오비디우스가 여성들을 지나치게 감정에 휩쓸리고 정욕에 목매는 존재로 여기는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자의 질투는 금물이라거나, 여자의 신체의 단점을 들추지 말라거나, 오르가슴을 함께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선 여성의 감성을 예민하게 살피고, 사랑의 기쁨을 함께 누릴 것을 권장하고 있는 듯해 여성에 대한 깊은 배려를 느끼게도 한다.
지금까지 오비디우스가 교사하는 내용은 남성의 입장에서 사랑에 약한 여자들을 흔들고 사랑을 쟁취하는 비법들이다. 당연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마초(macho)적 지침들이다. 이에 대한 균형을 생각해서인지 오비디우스는 제3권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을 쟁취하는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여자들도 남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오비디우스가 제시하는 여자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 역시 현대에까지 그대로 애용되고 있는 고전적 방법들이다. 우선 여성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고, 또 자신만의 헤어스타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이칼리아 왕국의 공주 이올레의 헤어스타일에 헤라클레스가 한눈에 반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또 화장하는 모습을 남자에게 보이지 말라거나 피부색과 체형에 맞게 옷차림을 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여성에 대한 신비감을 유지하라는 의미다. 노래와 시와 춤을 겸비하라거나 사교적인 놀이를 익힐 것을 권하는 것은 여성의 매력을 보태주어 남성의 관심을 끌게 하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오비디우스는 남성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비법도 교사하고 있다. 남자의 라이벌을 활용해서 사랑의 열망을 부추기고, 남자가 사랑받고 있다고 믿게 하라는 것은 남자의 사랑의 허세와 질투심을 이용하여 옭아매는 방법인 셈이다.
오비디우스는 에로스의 수제자답게 사랑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처방도 내리고 있다. 사랑의 치유는 사랑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다.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거나 사랑을 끝내고 싶다면 바빠지라고 충고한다. 바쁜 일상에 몰입하다보면 사랑의 열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농사에 전념하거나 사냥에 빠지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된다. 사실 이런 방법은 자기 스스로 치유하는 긍정적인 방법인 셈이다.
오비디우스는 상대에 대한 환멸을 만들어내서 사랑을 치유하는 부정적 방법도 열거해 준다. 여자에게 당한 좋지 않을 일들을 상기하거나, 여자의 약점을 드러나 보이게 한다거나, 여자의 단점을 찾아내는 방법도 사랑을 식힐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다른 사랑을 여럿 찾아보라는 충고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사랑의 치유법으로는 치졸하고 비열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오비디우스의 경험에서만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당대의 사랑 이야기들의 관찰에서 예리하게 추출해 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오비디우스가 제시한 사랑의 쟁취법과 치유법은 그 사례로 든 숱한 그리스 신화와 전설, 역사적 사실들로 인해 또 한편의 신화이야기를 읽는 듯하다. 오비디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십분 활용해서 자신만의 사랑의 교범을 만들었다. 이런 까닭에 각각의 그리스 신화와 전설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비디우스가 전하고자 하는 취지와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행히 이 책은 운문으로 쓰인 오비디우스의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역자가 언급된 신화와 전설의 개요를 본문으로 보태고 오비디우스의 운문을 산문으로 풀어쓴 평역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물론 평역인 탓에 오비디우스의 라틴어 원전 번역의 맛을 생생히 느낄 수 없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이성 간의 영혼의 끌림과 고귀한 감성의 어울림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상한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오비디우스는 왜 사랑하게 되고 어떻게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지를 기술하고 있지 않다. 단지 연애의 기교와 방법을 교사하는 사랑의 자기 계발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불편해 하는 독자들도 많이 있을 듯싶다.
당시 로마인들에게도 이 책을 선호하는 그룹의 견해는 꽤 상반되었다. 점잖은 귀족이나 기사계층은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내용들이 너무 많은 저속한 책으로 여겼을 것이다. 실제 남편이나 아내에게 간통을 부추기는 대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방법론에 갈증을 느끼던 일반 대중에겐 폭발적인 환호를 받았다.
아무튼 오비디우스가 사랑의 기술을 2000년 전에 교사한 탓인가, 이탈리아 남성들이 유독 사랑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이유를 알듯하다. 물론 그런 재능을 어느 여성에게나 보인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겉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든, 이성의 감성과 특질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사랑에 대한 욕망은 이 책에 대한 숨은 수요를 만들어 냈을 듯싶다. 출간 당시부터 천박한 책이라는 학계의 질타가 쏟아지고, 그 후대에도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평가가 계속 이어졌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낯 뜨거운 외설은 아니다. 물론 도덕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사랑의 쟁취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교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오비디우스는 어디까지나 인간 세상의 경험자의 한 사람이자, 신화와 전설에서 숱하게 행해졌던 갖가지 사랑의 행태를 예리하게 분석해 낸 사랑의 탐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비디우스가 제시한 사랑의 기술이 오늘날에도 하나하나 적실성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사랑의 모습과 인간의 감성이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 때로 비열하고, 저속하고, 야비한 사랑의 방법들도 인간 세상의 충실한 모사(模寫)일 수 있다. 결국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벌어지고 있고, 미래에도 계속 시도될 우리들의 사랑의 성공담이자 실패담이 아닐까. 사랑의 과정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아무튼 이 책으로 인해 꼭꼭 숨겨놓아야 할 사랑의 천기(天機)는 누설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더 이상 비법이 아닐 수 있다. 남자는 여자의, 여자는 남자의 사랑의 기술을 서로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를 기만하는 수법을 서로 알게 된다면, 더 이상 상대에게 유효한 사랑의 기술로 작동될 수 없다. 사실 최고의 사랑의 기술은 진정성이 아닐까. 진실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사랑의 기술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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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도서: 『사랑의 기술』, 오비디우스 저, 김원익 평역, 에버리치홀딩스(2010), 333쪽. |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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