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8조 원 넘긴 준조세 기업 목 비틀기…국회선 나몰라라
   
▲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최순실 씨가 3일 밤 결국 구속됐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당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안종범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을 최순실이 막후에서 움직여 53개 기업이 774억 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직권남용 공범 혐의다.

검찰은 직권남용죄가 적용되는 공직자 신분이 아닌 최순실이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안종범 전 수석과 공모해 기업 측에 압박을 가해 기금 모금을 돕게 한 것으로 보았다. 법원은 검찰 측 주장을 수용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불러온 핵심 사안은 기금 강제모금 여부다. 태블릿 주인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인 가운데 국정농단, 국기문란 의혹은 뒤로 물러났다. 

이러한 기금 모금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이는 행정부 입법부를 가리지 않는다.

비근한 예로 한중FTA에 따른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 있다. 기업들로부터 매년 1000억 원씩 10년 동안 1조 원을 갹출한다. 기업 등을 쳐서 농민들에게 나눠 주자는 의도다. 지난 2014년 국회가 한중FTA를 비준하면서 농민들 반발을 무마하는 대가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나섰고, 그 재원을 민간 기업으로부터 걷기로 결정한 준조세다.

   
▲ 최순실과 안종범 전 수석이 공모해 갈취 수준의 협박으로 기업들로부터 몇 백억 원 받은 게 사실이라고 치자. 정부가 준조세 명목으로 연간 수백 건 사업에 수조 원의 추가 세금/기금을 걷고 있는 것에 대해 여야 의원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상생(?)협력기금의 목표는 개방농정에 따른 농어촌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경제적 지원이다. 문화, 체육예술인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미르·K스포츠 재단과 공익 추구라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상생협력기금 개정 과정에서 민간기업의 자율적 기부는 한계에 있고 이에 따라 조성액 목표 달성이 힘들다는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자, 그 해법으로 1년 목표액을 1000억 원으로 구체화 하고 미달 시 정부의 충당의무를 법률에 명시했다.

기업 모금으로 매년 1000억 원이 모이지 않을 경우, 차액 충당용으로 국민 세금을 들여 농어촌을 추가 지원하자는 강제 조항이다. 법안심사 소위에서 이준원 농식품부 차관은 “모금 목표액을 명시하는 것은 준조세”라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여야가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정부 측을 질타한 결과 법안명시라는 합의안을 도출하게 됐다.

기금 설립 근거가 될 「FTA 지원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10월 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결을 통과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한창 물오르던 시기다.

국회의원들이 향후 10년간 기업의 등을 쳐 받겠다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은 매년 1000억 원씩이다. 청와대나 최순실까지 갈 것도 없다. 국회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같은 기금을 일 년에 하나 이상 만들고 있다.

최순실·안종범 모금 강요? 준조세 문제일 뿐

준조세는 ①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②부담금관리기본법에 열거된 각종 부담금, ③비자발적인 기부금 및 성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KBS 수신료도 일종의 준조세다.1)

문제는 ③비자발적인 기부금과 성금이다. 법적 근거 없이 정부의 정치성 사업 또는 체육, 문화, 외교 행사에 기업 돈이 정부 쌈짓돈처럼 동원되는 경우다. 미르·K스포츠재단은 이 같은 사례다.

갈취수준의 준조세다. 박근혜정부만 따져도 재단법인 미르 뿐 아니라 청년희망펀드에 창조경제혁신센터 건설 및 운영비가 꼽힌다. 평창동계올림픽기금 조성에다 미소금융, 동반성장기금과 세월호 사고 위로금이 있다. 연말불우이웃돕기, 온누리상품권, 기업 사회공헌팀을 통한 음성적인 갹출도 빠지지 않는다. 연간 수백 건 사업에 기업 모금이 걷혀왔다.

   
▲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여부에 대한 세간의 비난은 내로남불, 이중 잣대의 전형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타락한 언론과 정치공학에 몰두하는 정치권의 민낯을 드러냈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눈치껏 알아서 내야 한다. 삼성과 현대가 솔선수범하면 나머지 기업들이 뒤를 따른다. 세월호사고 위로금과 평창동계올림픽 기금이 대표적 예다.

정부가 인정하는 준조세는 지난 2015년만 따져도 18조 원을 넘겼으며 정부가 인정치 않는 준조세(위와 같은 강제성 기금 모금 등)는 수조원에 이르고 있다. 준조세는 법인세보다도 커졌고 증가 속도도 훨씬 빠르다.

필자가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강제성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도 이러한 점과 일맥상통한다. 최순실과 안종범 전 수석이 공모해 갈취 수준의 협박으로 기업들로부터 몇 백억 원 받은 게 사실이라고 치자. 정부가 준조세 명목으로 연간 수백 건 사업에 수조 원의 추가 세금/기금을 걷고 있는 것에 대해 여야 의원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여부에 대한 세간의 비난은 내로남불, 이중 잣대의 전형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타락한 언론과 정치공학에 몰두하는 정치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러한 기금 모금이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향후 비자발적인 기부금 및 성금 모금은 어떤 기업에게도 바라지 말라. 당신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이를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 정부 정치권 모두.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1) 준조세는 법적으로 정립된 용어가 아니나, 일반적으로 위와 같이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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