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생 비행시간 모자라 항공사 지원 엄두 못내
"항공사도 교육비 부담" vs '경쟁력 약화' 우려
항공업계가 조종사 인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종사들은 늘어난 운항 횟수에 피로감은 높아지고, 노후한 항공기에 부족한 정비 인력까지 겹쳐 늘 사고위험에 노출돼 있다. 외국인 수급에 따른 내국인 조종사와의 갈등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 차원에서 항공사의 안전성 확보와 조종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조종사 수급난을 겪는 현 상황에서 운항승무원들의 고강도 근무실태에 따른 고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의 대응을 2회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최주영 기자]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국에 입국한 김모(30)씨는 조종사의 꿈을 접고 미국 일반기업 취직을 고려중이다. 김씨는 "수 천만원의 교육비와 시간당 250달러를 들여 비행시간을 쌓았지만 항공사에서 요구하는 시간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라며 "부기장 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얘기는 사실"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항공기 조종면허를 취득하고도 항공사나 기관에 취업하지 못한 '비행낭인(조종사 면장이 있어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6년 조종면허를 취득한 인원은 1655명(자가용 면허는 제외)으로 전년(1393명) 대비 18%가 늘었다. 실제로 조종면허 취득자 수는 2012년 961명 2013년 1061명 2014년 1168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 중 취업자 수는 40%에 불과하다. 국토부가 국적항공사의 조종사 채용 추이를 살펴본 결과, 면허 취득 인원이 가장 많았던 2016년 채용은 696명에 그쳤다. 2015년에는 단 35%만이 채용됐다. 조종사 면허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느는데 비해 매년 1000~1500명 이상이 면장을 취득하고도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억대 훈련비..."황새 되려는 뱁새 업보?"

조종사 훈련생들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항공사에 취업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불만이다. 이론적인 교육은 감안할 수 있어도 실교육을 위해 해외에서 비행시간을 채워야 하는 비용을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년 1억원에서 최대 3억원의 비용을 들이는 것은 물론 항공사들이 요구하는 비행시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채용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에서 민항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크게 군경력과 민경력 분야로 나뉜다. 군 경력의 경우 10년에서 15년 의무복무 후 민항사에 취직되기 때문에 지원자 수가 한정적이며 민경력 조종사의 경우 국적항공사의 자체프로그램이나 사설교육원에서 비행교육을 해야 한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민경력 조종사 요건(PPL/CPL 등)을 충족하기 위해선 비행훈련원을 물색하는 것이 첫 단계로 대부분 국가가 지정한 전문교육 기관 또는 사설 교육원에서 교육을 수료하게 된다. 

   


항공사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도 자비를 들여 면장 취득후 취업이 가능한 구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사설교육원과 제휴해 운영중인 APP(대한항공), UPP(울진훌련원), PPP(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 등)가 그 예다. APP과정을 지원하면 일정 기간을 거쳐 교육을 받은 후 대한항공에 입사할 수 있지만 교육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식이다. 

대한항공은 1~4단계(최소 3년) 훈련을 거쳐 비행시간 1000시간을 채워야 부기장으로 입사할 수 있으며 아시아나항공 또한 비행시간 300시간(최소 2년)을 채워야 한다. 교육비는 대한항공이 2억원, 아시아나항공이 1억원 가량이다.

민경력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억원 대 훈련비를 부담해야 하는 훈련생들의 우려는 나날이 깊어진다. 조종사 입과생들의 말을 종합하면 비행학원은 1인당 교육비 4000만~5000만원부터 수억원을 호가하는 등 과정에 따른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국내 A훈련원과 계약을 맺고 미국 플로리다에서 훈련중인 황모(31)씨는 "보통 자가용 비행 기준으로 60시간당 1500만원에 계약 후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만만찮다"며 "사설학원 중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파산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환불을 받기도 힘들어 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비행시간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선선발 후교육제' 도입...업계 '혼란'

급기야 국토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조종사 수급 정책 추진방향을 통해 2022년까지 5년 동안 조종사 3000명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조종사 수급 정책 대책안에는 '취업보장형 교육제도(선선발 후교육)'를 도입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 담겼다. 

훈련비용 중 일부금액인 2000만원을 항공사가 부담하거나 대출 보증 등 지원을 통해 훈련생 개인 부담을 줄이는 취지라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그동안 교육생들 중심으로는 정부에서 조종사 훈련비를 간접 지원해 주거나 항공사가 채용 후 교육비를 연봉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취업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항공사들은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 국토부가 항공사에 조종사 교육 기능을 의무화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지원자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채용하는 것이 시간적·금전적 손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국토부는 취업 보장을 강조하는 분위기지만 항공사 입장에서 수료하고 기량이 되지 않은 사람을 채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또 APP나 PPP등 일부 선선발 후교육을 이미 실시중인 상황에서 훈련생들의 교육비를 부담하라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고, 또 막상 면장을 취득한 사람들에게는 수료했다는 증명만 주고, MOU나 연계과정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했다.

현장의 혼란도 만만치 않다. 한 조종사 예비훈련생은 "선선발 방식을 통해 교육받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면 해외 항공교육원이나 유학 등을 통해 면장을 딴 사람들의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또다른 예비훈련생도 "비행을 시작하는 최종 결정과 위험부담은 본인이 갖고 가는 것"이라며 "경쟁이 과열되면 훈련 비용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