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영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최주영 기자]기업들의 투자 감소로 재계의 내우외환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기업가정신’이 조명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종현 회장이 기업가이자 경제단체의 리더로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설파한 인물로 회자된다. 석유사업부터 정보통신산업 진출까지 사업다각화를 위해 10년 앞을 내다본 그의 경영철학은 이미 유명하다.

"일본은 경기 호황으로 투자처를 찾고 있다. 돈 걱정 말고 서두르라." SK의 전신 선경직물이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1969년)하기 1년 전인 1968년 초.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공장 투자를 만류하던 간부에게 이같이 말했다. 당시 직원들은 자본금 5000만원 규모의 선경이 32억원을 들여 원사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관건은 ‘차관’과 '자금 융통'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선경직물의 공장 설립을 위해 일본기업과 50대 50으로 합작 사업 계획을 세워 정부로부터 차관을 성사시켰다. 당시 은행금리가 25%에 육박할 때여서 거래하던 일본 기업에서 실을 무상으로 들여와 6개월 만에 소진시켜 남은 기간 이자를 버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정부의 허락 없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외화대부제도도 적극 활용했다.

1980년 유공(현 SK에너지) 인수 때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평소 친분이 있던 정부의 실권자와 적극 교류한 것이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목표를 설정, 수직계열화를 이룬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최대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유공 인수 다음에는 유전 개발에 뛰어든다고 발표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10년 뒤에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 봤습니까?” 생전 그가 임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던진 질문이다. 한 사업을 성사시킨 후 다음 단계는 또다른 신사업 개척을 위한 구상에 몰두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다.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포기하고 몇 배 비싼 돈을 들여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것도 이때였다. 평소 “꼭 사고 싶은 것일수록 비싸게 사야 그 일이 잘 된다”며 ‘내재된 가치’에 주목했던 최종현 회장이 시장경제 논리를 고수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할 일이다. 

그로부터 20년후 SK그룹은 명실공히 '에너지화학·정보통신' 주력의 재계 3위 회사로 성장했다. 지금은 최종현 회장의 아들 최태원 회장이 지휘하고 있다. 2011년 인수한 SK하이닉스는 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45%를 책임지고 있다. 또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 굵직한 인수합병으로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 사업이 확장일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통신, 석유화학 등 전 부문의 글로벌 일류를 목표로 한다.

다만 이런 시기에 최태원 회장이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를 따라 기업의 이윤 추구 등 경제적 가치와 기업경쟁력에 집중했던 선대 회장과 달리 최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는 그저 ‘이상적인 룰’에 머무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SK는 그룹의 정관을 바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회계 장부에 함께 표시하는 ‘더블보텀라인(Double Bottom Line)’을 구축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경제적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로 추산하기 위한 지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내부적으로는 변화를 받아들일 틈도 없이 따라야하는 직원들의 불만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사회를 위해 이익의 일부를 환원해 보답하는 게 기업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에만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본연인 이익 창출보다 사회문제 전체를 떠안게 돼 자칫 커다란 짐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적 가치가 훼손되는 순간 기업의 본질도 빛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직원과의 대화에서 최태원 회장이 "더 많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면 (기업의) 경제적 가치가 일부 훼손돼도 괜찮다"고 답한 점은 여러 모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SK그룹은 올 상반기 확대경영회의에서 “반도체 중심 성장전략을 탈피해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절실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SK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현 상황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중 무엇이 진짜 우선순위인지 고려해야 한다.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철학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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