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으로 배우는 시장경제㉘]하이에크 "사회주의, 무너진다 했잖아"
'노예의 길' 등 통해 사회주의 계획경제 비효율성 지적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주목…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나광호 기자
2018-10-02 16:34

[미디어펜=나광호 기자]"거봐, 내가 뭐랬어!"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는 "지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어요!"라는 아들 로렌스 박사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


평생에 걸쳐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시장에 대한 지식의 전파를 막는 등 경제계산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 하이에크가 승전가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하이에크는 1944년 출간한 저서 '노예의 길'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는 계획경제는 결국 정치적 자유도 박탈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경기 부양 및 불황 탈출을 목표로 정부가 양적완화나 공적자금 투입 등 시장개입을 벌일 경우 과오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특정 재화에 대한 투자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수익성에 대한 판단을 흐트러뜨려 잘못된 유형의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을 늘리며, 호황기에 이같은 과오투자가 수익성 하락에 직면하게 되면 은행이 대출을 축소하고 기존 대출을 회수하면서 금리 상승 및 투자 위축 등 불황으로 접어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황은 과오투자를 바로잡고 시장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지만, 정부가 이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회복이 늦어지는 등 '유인의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좌)·프리드리히 하이에크(우)/사진=유튜브 캡처·미디어펜


이같은 주장은 1930년대 인기를 끌게 되지만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을 내고, 오스카 랑헤와 폴 사무엘슨 등의 경제학자가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도 계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주류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후 40여년간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경기부양책이 이어졌으나, 1970년대 물가가 상승하는 동시에 경기가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영국의 대처 수상과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정부개입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정책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면서 하이에크가 속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중흥기에 접어들게 된다.


케인즈주의는 경기가 침체되면 재정적자를 불사하는 정부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고자 한다. 경기침체의 원인을 수요부족으로 판단, 사람들의 지갑을 채워주면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회복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케인즈주의는 갈 곳을 잃게 된다.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유효수요를 억제해야 하지만 이럴 경우 경기침체가 확대되는 난제를 해결하기 못하는 것이다.


   
'노예의 길'·'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고급 입문서'/사진=교보문고·미디어펜


이처럼 케인즈주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미국이 또다시 케인지안 정책을 추진하면서 1990년대 '닷컴 버블'과 2000년대 중후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제로 금리'를 꼽는다. 시장에 유동성이 과잉공급되는 과정에서 집값 상승에 대한 과도한 기대심리를 야기했고, 이것이 거품이었다는 징후가 발견되면서 이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파산이 금융기관 부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업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이 축소되는 등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겠다고 금융지원을 단행하고 클러스터 등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이것이 시장을 교란해 자본의 수익성을 하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연암 박지원도 하이에크와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조선 정조 때 한양에 큰 기근이 발생, 굶어죽는 백성들이 속출하고 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대신들이 쌀값 통제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쌀값이 오르면 백성들이 이를 구매하지 못해 아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를 들은 왕이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엄벌에 처하라는 교지를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연암은 이와 정반대의 상소를 올렸다. 쌀값 폭등 소식을 들은 상인들이 한양으로 집결하고 있는데 이를 처벌하면 상인들의 걸음이 끊어져, 굶어죽는 백성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왕은 상반되는 주장 중 연암의 손을 들었고 쌀이 한양으로 모이게 되자 공급이 늘었을 뿐 아니라 경쟁으로 인해 쌀값이 하락하면서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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