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피해자·유족 962명, 일본기업 87곳 상대로 소송 14건 진행…日기업의 한국 자산만 절차 거쳐 압류 가능
[미디어펜=김규태 기자]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3년 8개월 만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면서 유족들의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일본 기업들의 배상 조치가 이루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이 30일 "1965년 당시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측 청구권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배상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각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권리가 확보됐지만, 국제법상 '주권 면제 원칙' 때문에 그 효력이 국내 재산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패소한 일본기업 신일철주금측이 이날 판결에 대해 "극도로 유감이고 일본 정부의 대응상황에 입각해 대응할 것"이라며 '배상금 지급 불가'의 뜻을 내비춰 자발적 배상 가능성이 낮아졌다.

우선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은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측에 배상금을 지급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의사가 없다면 국내에 있는 신일철주금측 자산을 확인한 후 국내 법원을 통해 강제집행에 들어가야 한다.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은 포스코주식 지분 3.32%(7500억 상당)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미국주식예탁증권(ADR) 형태라 미국 법정의 승인이 있어야 압류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신일철주금에게 국내거래처들과의 매출 채권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해 즉각 압류할 수 있지만, 신일철주금이 그 전에 국내 자산을 모두 처분하면 배상 받기 어렵다.

지난해 철강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3위인 글로벌 대기업이자 일본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철주금은 지난해 순매출액 5조6686억엔(57조4000억여원), 영업이익 1824억엔(1조8500억여원)의 실적을 거뒀고 국내 여러 기업과 거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신일철주금은 지난 2012년 본사 주주총회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최근 열린 주총에서는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피해배상이 끝났다'는 일본정부 입장을 따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의 이번 강제징용 판결로 인해 다른 피해자와 유족들의 관련 소송의 귀추도 주목된다.

현재 징용 피해자 및 유족 962명은 미쓰비시중공업·히타치조센·후지코시 등 일본기업 87곳 상대로 소송 14건을 진행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파악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21만6992명이고,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가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14만8961명(생존자 5000여명)이다.

행안부 기준으로 해도 피해자 중 생존자는 3500여명에 달하고 피해자가 사망했더라도 유가족이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법조계는 향후 새로 제기될 민사소송에서 소멸시효(10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손해배상 청구는 피해를 입은 날 등 특정시기로부터 10년 내로 소송을 걸어야 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는 해당 사건 시효의 계산 시점을 관련문서가 공개된 2005년 2월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담당 재판부가 소송별로 소멸시효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판결문 등 해당 판례를 면밀히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측 입장은 강경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30일 담화를 통해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규정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제2조를 '참고용'으로 첨부시켰다"며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 일방적으로 뒤집고 훼손했다.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 등 경제단체들도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한국 내 투자와 비즈니스에 장애가 될 수 있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재해석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게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어떤 실효적인 배상 조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대법원은 이번 소송 재상고심에서 "일본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옛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신일철주금)에 대해서도 행사할 수 있고, 피고 측이 주장하는 민법상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0월30일 피해자 4명이 일본측 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