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수준 상속세 무서워 기업지분 줄줄이 매각
당정 내놓은 상속공제 완화 '반쪽 처방' 논란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정부가 겉으로는 경제 활성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세계 최고수준의 상속세가 버겁다는 기업인들의 아우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오너들이 상속세 부담에 자신의 지분을 줄줄이 매각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가업상속 공제요건의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의 사후관리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것 외에 기존 공제한도(500억원)와 공제대상(연 매출액 3000억원)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반쪽 처방' 논란을 키우고 있다.

29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사후관리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지만 고용과 업종을 100%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은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은 세부적으로 고용인 유지조건에 임금총액을 섞는 방안도 검토하고 공제기업 업종의 경우 업종 심사를 유기적으로 진행해 업종 변경을 일부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문턱은 바뀐게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정례보고를 받고 있다./사진=청와대

기업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상속공제대상 조건인 '연 매출 3000억원 미만'도 마찬가지다. 집권여당 일각에서 이를 5000~7000억원까지 확대하자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기존 조건을 고수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태스크포스'가 최근 기재부에 기업 매출액 기준을 5000억원으로 확대하고 공제한도도 늘리자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은 바 있고, 기재부 관계자는 29일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정규직 채용과 같은 조건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세제 혜택 기준도 마찬가지"라며 난색을 표했다.

당정은 다음달초 회의를 열고 쟁점 조율을 거쳐 가업상속제도 개편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최고세율 65%까지 높아지는 상속세로 인해 ㈜두산 및 LG그룹 등 최근 재계 전반적으로 '상속세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이나 자회사 매각에 나서 기업 경영을 왜곡할 뿐더러 상속세를 내는데 쓸 배당을 늘려 장기적인 투자여력이 훼손되고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처한 상황은 더 심각하다. 양도세 부담에 민감할 뿐더러 업황이 좋지 않아 지분매각도 용이하지 않다는 고충이다. 이에 따라 중소·중견기업들은 자산용도를 변경하거나 물적분할을 통해 회사 자체를 매물로 내놓는 추세가 커지고 있다.

실제 상속세를 납부하는 비율인 실효세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일본 12.95%, 독일은 21.58%, 미국은 23.86%이지만 한국은 28.09%에 달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28일 열린 상속세제 개선토론회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현장에서 활용이 어렵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가정신 계승과 체화된 노하우·기술전수라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어려워 기업을 물려주기보다 매각을 고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