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기관과 차별화·소비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위치 정할 필요 있어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가 시장 세분화와 시장 표적화를 마친 다음에는 문화예술 소비자의 마음 속 어느 지점에 문화예술작품을 자리매김하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작품의 위치(position)란 경쟁하는 문화예술작품과 비교해 문화예술 소비자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자리다.

소비자들이 어떤 작품에 대해 속으로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관련되기 때문에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와 무관할 때도 있다. "마케팅이란 제품력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다." 이러한 마케팅 명언이 나온 배경도 실체와 인식이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포지셔닝(Positioning)이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가 경쟁 기관이나 단체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한 다음 상대적으로 틈새가 보이는 유리한 위치에 문화예술작품을 자리매김하고 인식시키는 과정이다. 지난 1979년 트라웃과 리스(Trout & Ries)가 이 개념을 제시한 이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실무계에서는 포지셔닝 개념을 다양한 맥락에서 활용해왔다. 트라웃과 리스는 마케팅 기획자들이 시장 점유율을 경쟁 브랜드와의 경쟁 양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 하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지셔닝 개념에 의하면 마케팅의 성과는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의 시장 구도가 아니며, 실제의 시장 점유율에 관계없이 소비자들이 어떤 브랜드에 대해 머릿속으로 느끼는 인식의 싸움에 따라 결정된다.

문화예술 마케팅에 있어서도 포지셔닝의 핵심은 차별화를 통해 어떤 문화예술기관이나 문화예술작품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특별한 브랜드 이미지로 정립하는데 있다. 문화예술 소비자에게 문화예술작품을 특별한 이미지로 남게 하려면 일관된 포지셔닝 전략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기관이나 문화예술작품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문화예술작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인상은 문화예술작품의 특성을 알리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나아가 문화예술 마케팅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문화예술작품의 고유한 특성이나 이미지를 하나로 고정하거나 다르게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작품의 본질적인 특성과 문화예술 소비자들이 느끼는 이미지를 결합시켜 포지셔닝 전략을 결정해야 한다. 포지셔닝 전략에 따라 결정된 포지셔닝 지도(positioning map)를 보면,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기획한 문화예술작품의 위치나 지향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 포지셔닝 지도의 예.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문화예술 소비자들은 어떤 문화예술작품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그 작품이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따라 문화예술의 소비 활동을 달리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트라웃과 리스는 제품과 서비스의 위치를 설정하려면 마케팅 관계자들이 6가지의 기본 질문을 꼼꼼히 점검한 다음에 포지셔닝 전략을 수립하기를 권고했다. 6가지의 기본 질문을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의 맥락에 알맞게 변형시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이 문화예술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떠한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은 문화예술 시장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이 그 위치를 차지하려면 다른 곳보다 얼마만큼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은 그 위치를 차지하고 지켜갈 정도로 마케팅 비용이 충분한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이 하나의 일관된 포지셔닝 전략에 매달릴 수 있을 만큼 끈기가 있는가?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 또는 문화예술작품에 대한 크리에이티브 접근법이 포지셔닝 전략과 부합되는가? 이  6가지의 기본 질문은 문화예술 마케팅 관리자의 주관적 인식이 아닌 문화예술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어떤 문화예술작품을 선택할 것인지 다른 작품을 선택할 것인지, 문화예술 소비자들은 문화예술작품의 특성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가 통합되어 정해지는 문화예술작품의 위치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는 경쟁 기관과 차별화되고 문화예술 소비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위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문화예술작품의 포지셔닝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은 대체로 4가지가 있다. 각각의 포지셔닝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첫째, 문화예술작품의 특성에 의한 포지셔닝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선보이려는 문화예술작품의 특성에 따라 포지셔닝 전략을 전개하는 경우이다. 기업에서도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제품의 특성에 의한 포지셔닝 전략이다. 이 전략을 적용하면 경쟁 기관이나 단체에서 모방하기 어려운 그 작품만의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문화예술 소비자의 머릿속에 작품의 특성을 강력히 자리잡게 한다. 나아가 표적시장에 속한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분명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작품의 특성을 짧은 광고 카피로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도 포지셔닝을 하는 좋은 방법이다.

둘째, 경쟁하는 문화예술기관이나 작품을 활용하는 포지셔닝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공연하거나 전시하려고 기획한 문화예술작품을 경쟁 기관이나 단체의 문화예술작품과 연계시켜 포지셔닝하는 경우이다. 다른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이미 확립된 위상과 비슷하게 동화시키거나 차이점을 대조함으로써, 기존에 알려진 문화예술작품의 유명세를 활용하는 것이다. 경쟁사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뚜렷한 포지셔닝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자칫 아류 프로그램으로 전략할 수도 있다. 이미 문화예술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프로그램에 직접적 혹은 암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이므로, 반드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용도 제시에 의한 포지셔닝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용도를 제시하거나 촉진함으로써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 문화예술작품과 연계해 공간을 다르게 구성하거나 부대사업을 추진함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새로운 용도에 의한 포지셔닝을 전개했다. 19세기 빅토리아여왕 시기에 건립된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이름만으로는 박물관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미지도 고루하다는 평판 때문에, 박물관 명칭을 바꾸려 했다가 뜻밖에도 새로운 용도 제시에 의한 포지셔닝을 전개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한 채 "1990년대의 로라 애슐리(Laura Ashley)가 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웠다. 로라 애슐리는 1950년대에 천연섬유 소재의 꽃무늬 옷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1980년대에는 전 세계 500여 매장에서 2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로라 애슐리의 브랜드 자산을 차용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주의로 '빅토리아 시대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용도를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패션 브랜드의 가치를 박물관의 브랜드 가치로 연결하는데 성공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자료=김병희 교수 제공

넷째, 재 포지셔닝이다.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서는 성과가 좋을 때 문화예술 마케팅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문화예술 시장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문화예술 소비자의 욕구나 기대가 달라졌는데도 이런저런 변화 추세를 인지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가 뜻밖에도 많다. 기존의 포지셔닝 전략이 경쟁 우위를 잃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에서의 위치를 다시 설정하는 재 포지셔닝(Re-Positioning)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자만심에 빠져 있다가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에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 다가올 수 있다. 그러기 전에 포지셔닝 전략을 다시 짜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서야 한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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