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백악관서 루이지애나 제철소 신설 등 대미투자 계획 발표
트럼프, 미국 생산차 무관세 원칙 재확인…"현대차, 관세 안내도 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현대자동차그룹이 향후 4년 간 미국에 약 31조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해 미국 내 톱티어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2일로 예고한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앞두고 나온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한국 기업 가운데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현대차가 처음으로 이를 시작으로 국내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총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미국에 투자한다. 투자 분야는 △완성차 생산(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61억 달러) △미래산업·에너지(63억 달러) 등 세 부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투자 발표 행사에 참석해 "현대차는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50개 주에서 57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원해 왔다"며 "향후 4년 간 추가로 210억 달러를 투자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는 관세가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현대차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는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미국 생산 차량에 대해 무관세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 (오른쪽 세번째)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21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상호관세 앞두고 투자 발표…현지사업 확대로 경쟁력 강화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이에 앞서 발 빠르게 대미 투자 카드를 꺼내 들며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차의 이번 투자는 단순한 생산 확대 차원을 넘어 통상 리스크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정치적 리스크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한 사례라는 평가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미국에 총 210억 달러(한화 약 31조 원)를 투자한다. 분야는 △완성차 생산(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61억 달러) △미래산업·에너지(63억 달러) 등 세 부문이다.

우선 자동차 부문에서는 미국 현지 생산능력을 120만 대로 확대하기 위해 86억 달러를 투입한다. 현대차는 현재 앨라배마(36만 대), 기아 조지아(34만 대), HMGMA(30만 대) 등 총 100만 대 규모의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조지아 HMGMA를 20만 대 증설해 총 50만 대로 확대하고, 기존 공장들의 설비 고도화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는 61억 달러가 투입된다.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전기차 배터리팩 등 핵심 부품의 현지 조달 비중을 강화한다. 또 루이지애나주에는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신설한다. 이는 저탄소 자동차 강판을 현지에서 조달해 관세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다.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는 총 63억 달러가 투입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로봇), 슈퍼널(UAM), 모셔널(자율주행) 등 미국 내 자회사와 함께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개발에 나선다. SMR(소형모듈원자로) 착공, 태양광 발전소 구축, 초고속 전기차 충전망 구축 등 에너지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도 병행된다.

◆ 인건비 부담은 리스크…"단기적 수익 희생, 마켓셰어 확대"

현대차에 미국은 최대 수출 시장이자 전략적 거점이다. 1986년 '엑셀' 수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지난 2월까지 누적 판매는 2930만 대를 넘어섰다. 올해 중 3000만 대 돌파가 유력하다.

2023년에는 현대차가 91만 대, 기아가 79만 대를 판매하며 GM·토요타·포드에 이어 점유율 4위를 기록했다. SUV, 제네시스 브랜드, 전기차(E-GMP 기반) 등으로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하며 시장 내 입지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관세 예고는 현대차그룹에 위기감을 확산시켰다. 현대차그룹의 '31조 통 큰 투자'는 단순한 공장 증설이 아닌 생산·기술·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현지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이번 대규모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통제 가능한 범위로 끌어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자동차에 한해 관세 면제를 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자동차에 한해 관세 면제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 FTA 체제 하에서는 생산 지역에 따른 차별적 관세 부과는 국제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기업의 현지 투자를 이끌어낸 뒤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전략을 사용해 왔고, 이번 역시 같은 맥락"이라며 "자동차 외 품목은 아직 모호하지만 미국 내 생산 확대는 분명한 우호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현대차는 트럼프 행정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지 생산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인건비가 높고, 전미자동차노조(UAW)에 가입하게 될 경우 인건비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이 교수는 "미국은 시간당 임금이 60달러 수준인데, UAW에 가입하면 100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며 "생산 단가가 높아지면서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도 "미국은 노조가 매우 강성이고, 생산직의 숙련도도 낮은 편"이라며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경쟁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과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관세를 맞게 되면 상대적으로 현대차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이 희생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점유율 확대를 통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증권가도 이번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25% 관세 부과 시 현대차·기아의 연간 이익 감소 폭이 최대 10조 원에 달할 수 있는데, 투자 확대를 통해 이를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미국의 한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등 관련 기업 전반에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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