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동맹국을 막론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로부터 시작된 고관세 예고와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 확산에 따라 통상 환경이 급변하면서, 각국의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대로 미국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분위기다. 이에 한국 기업들이 처한 난관과 대응 방법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최근 국내외 정세 변화와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실적 악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재계를 옥죄는 법안들이 속속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 내에서는 대표적으로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에 대한 걱정이 크다. 노란봉투법은 불법적인 파업을 막지 못할 것이며, 상법 개정은 소송 남발로 인해 기업들의 경영 및 투자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경영침체와 관세 전쟁으로 인해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내 정치권에서도 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기업들의 한숨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계 내에서는 거부권을 통해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제약이 걸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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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 노조가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현대제철 노조 인천지회 홈페이지 |
◆노란봉투법 또 추진…“불법 파업 조장하는 악법”
더불어민주당은 산업계에서 반대하는 법안인 노란봉투법 입법을 재차 추진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해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023년 12월과 지난해 8월 모두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산업계의 우려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바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난 2월과 이달 들어서도 노란봉투법을 재발의하면서 국회를 통과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이전에 폐기된 법안보다 더 독해졌다. 근로자의 개념을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까지 확대하면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도 포함됐다. 또 ‘근로자가 아닌 자가 가입할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현행 규정도 삭제하고, 노무 제공 거부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
산업계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시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불법 파업을 과도하게 보호하면서 기업과 경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이 큰 가운데 손해배상청구마저 막힌다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협력업체들의 노조와도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업종은 협력업체가 수백 개에 달하는데 이들 노조의 교섭 요구나 파업에 대응하려면 여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협력업체와의 거래 단절 및 해외 이전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도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피해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 노조는 지난 1월부터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놓고 사측과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부분파업에 이어 총파업까지 진행했다.
결국 현대제철 측은 사상 최초로 당진 냉연공장에 대해 직장폐쇄까지 하는 강수를 뒀다. 현대제철 측은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냉연 부문에서 27만 톤, 약 254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직장폐쇄를 해제하고 노사 측은 다시 협상을 재개했지만 하루 만에 결렬되면서 노조는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도 27일 총파업에 나선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 지정과 대통령 파면’을 주장하면서 벌이는 파업이다. 문제는 정치적 요구를 담은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정치 총파업을 종종 벌이면서 사회 혼란과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통과할 경우 이러한 불법파업에 적극적인 대응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외국 자본 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비해 선진화된 노동법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도 쟁의자체에 면죄부를 주고 있진 않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매년 파업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노란봉투법까지 통과하면 더욱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며 “협력업체들은 현재도 불법 파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송까지 걸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파업으로 받는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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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소송 남발하고 투자도 위축”…거부권 ‘절실’
상법 개정안도 기업이 반대하는 법안 중 하나다. 상법 개정안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산업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면서 국회 본회의를 이미 통과한 상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내용도 담겼다. 산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주가가 하락하거나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을 때 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 신사업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때도 소송을 우려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영권 리스크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투기 자본의 적대적 M&A가 늘어날 수 있는데 중소기업은 적은 금액으로도 경영권 분쟁이 가능해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SDI는 지난 14일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미국 GM과의 합작법인 투자, 유럽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 확대, 국내 전고체 배터리 라인 시설투자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 20일 3조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회사는 방산 부문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유상증자가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서둘러 유상증자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이 지난해 1조7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무리하게 유상증자에 나섰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차입을 통해 투자를 진행할 경우 부채비율이 현재보다 약 100%p(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외에서 수주할 경우에 부채비율이 높은 회사는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유상증자를 진행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향후 기업의 분할 역시 상법 개정안으로 인해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 필요에 따라 분할하는 경우가 있는데 소송 우려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례로 SK온은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다 보니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재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까지 흡수합병했다.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 현상으로 인해 배터리 업계가 주춤한 상황이지만 전기차로의 전환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SK온은 향후 대규모 수익을 내는 기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공개(IPO) 계획을 갖고 있는 SK온은 흑자전환이 되면 투자 유치를 위해 다시 분할을 진행할 수도 있는데 상법 개정안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에 대해 “상법은 경제 쪽에서 보면 헌법과 비슷한데 그걸 바꿔서 새 국면으로 들어가자는 게 적절한 타이밍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불안 요소가 많은데 지금 이 타이밍에 꼭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은 남는다”고 언급했다.
결국 산업계 내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정부가 동 상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최소한의 대응 조치로 자본시장법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회 과반석을 차지한 야당은 예견되는 기업들의 어려움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대응 조치에는 큰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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