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동맹국을 막론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로부터 시작된 고관세 예고와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 확산에 따라 통상 환경이 급변하면서, 각국의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제조업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대로 미국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분위기다. 이에 한국 기업들이 처한 난관과 대응 방법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책과 관세 등의 요소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IRA(인플레이션 방지법)을 비롯해 자동차 관세, 철강 관세 등 여러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 수출 의존도가 높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 악화에 큰 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갈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교역 분절화 현상이 극심해질 경우 한국의 수출은 최대 10% 감소하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 철강제품 등 중간재 위주의 제조업으로 산업을 일군 나라다. 미국은 대표적인 최종 소비 국가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간재, 중국이 최종 제품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중간재는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부품, 소재, 반제품 등을 뜻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따른 공급망 분열은 수년 째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 건으로 지적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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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반도체와 철강·석화까지 피해 가시권…영향 최소화에 방점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미중 갈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화웨이 제재를 시작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에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받게 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및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칩과 첨단 제조 장비의 수출이 금지됐으며 FDPR(해외직접생산품규칙)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국내 반도체 수출의 감소로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8%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2월 58억4000만 달러에 비해 18억60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 감소한 수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기업들은 현지 공장을 건설하면서 상황 타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생산 기지 다변화와 기술경쟁력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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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 |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와 오스틴에 370억 달러 이상 투자 계획을 밝혔다. 테일러에 2개의 첨단 로직 팹과 R&D(연구개발)시설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38억7000만 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다. AI(인공지능)용 HBM 칩 생산을 위한 첨단 패키징 공장과 R&D 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에서 약속했던 보조금 법안 칩스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폐지 분위기를 띄고 있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 검토를 통해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기존 합의된 지원금의 지급 지연이나 제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미중 갈등과 더불어 중국 영향에 따른 최대 피해자다. 공산품의 경우 석유화학소재를 활용해 생산된다. 이에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석유화학소재의 중국 수출까지 영향을 받았다.
철강업계도 미중 갈등의 영향을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시행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반감이 높아질 경우 중국산 기피 현상으로 중국산 철강재의 미국 수출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로 인해 중국이 대미 수출을 줄이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내로 물량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중국산 철강재는 저가로 판매된다는 점에서 철강업체들의 판매 감소는 물론 수익성까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에서는 최근 중국산 철강재를 막기 위한 반덤핑 관세 부과 움직임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중국산 후판 잠정 관세 부과에 이어 열연강판, 도금강판, 컬러강판까지 반덤핑 제소에 나서 무분별한 유입을 막는다는 방침이다.
◆중국 견제책 IRA 변화…자동차·배터리 시나리오 재점검
과거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했던 IRA의 변화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IRA는 본래 중국 견제책의 성격을 띄고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로 인해 폐지 내지는 적용범위가 변화될 분위기다.
앞서 국내 자동차 및 배터리 산업은 IRA 수혜를 노리고 현지투자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이번 관세 부과 정책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략을 수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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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사진=현대차그룹 |
자동차는 전동화의 흐름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던 전기차 부문의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 전기차가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며 대미 수출 경쟁력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30조 원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면서 현지생산능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HMGMA(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건설로 IRA를 대응하고 기아도 생산라인 현지화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현지 투자의 일환인 공장과 제철소 건설에는 2~3년에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어서 단기적인 피해는 불가피하다. 아울러 미국에서 비중국산 소재 사용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핵심소재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는 자동차뿐 아니라 배터리까지도 연관되는 부분이다. 자동차업계에서 전동화의 바람이 불면서 배터리 산업도 함께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IRA수혜를 노리고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현지에 단독 혹인 JV(합작공장)등 다양한 형태로 투자를 감행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리튬과 니켈, 코발트 등 원자재 공급망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관세 상승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하면 비용이 상승하게 된다. 이는 가격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체 공급망 모색에도 속도를 낼 필요성이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커졌다.
또한 가격경쟁력까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어 전방산업인 전기차의 캐즘(수요전체현상)의 해소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배터리 업체들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이유도 이에 비롯된다.
국내 3사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ESS(에너지저장장치), 소형 전자기기용 배터리, 산업용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 및 다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의 현지 투자를 진행한 만큼 이 부분을 강력하게 미국 정부에 내세워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규모 투자가 러스트 벨트에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의선 회장과 트럼프의 회동이 아마 정답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며 "결국에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관세 등의 정책들은 미국에 직접 투자를 하라는 것이 주된 메시지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서는 현대차가 보인 행동들이 하나의 모범답안이 돼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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