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역대 최악의 화마가 휩쓸고 간 경북·경남·울산 지역의 피해는 극심했다. 30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5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집과 모든 걸 잃은 이재민만 3만7000명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165배에 달하는 4만8000ha가 불탔다. 언제쯤 삶의 터전이 제자리를 찾을지 막막하다.
산불이 집어삼킨 현장은 폐허로 변했다. 농어업 피해는 집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지역 경제를 지탱해 온 농수산업, 관광업, 외식업 등은 사실상 멈췄다. 인근 주민 대부분이 경제적 피해에 노출됐다. 며칠 동안 연기와 재 때문에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 환경에서 신체적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정신적 충격은 가늠조차 어렵다.
그래도 희망이 싹튼다. 아픔을 보듬고 슬픔을 나누려는 기부와 자원봉사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들의 온정이 실의에 빠진 피해 주민들에게 조금씩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산불 피해 현장은 폐허로 변했지만 상처를 함께 하는 손길은 늘어나고 있다.
|
 |
|
▲ 역대 최악의 화마가 휩쓸고 간 경북·경남·울산 지역의 피해는 극심했다. 30명을 포함해 75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군 산불 발화지점 인근 야산에서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진화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지난달 31일까지 주요 구호 단체에는 738억 원 규모가 모였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265억 원, 대한적십자사 245억 원,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8억 원, 월드비전 19억 원 등으로 집계됐다.
기업들도 통 크게 동참하고 있다. 애터미 100억 원, 삼성 30억 원, LG 20억 원, SK 20억 원, 현대차그룹 20억 원, 아성다이소 10억 원, 고려아연·넥슨· SK디스커버리 각각 5억 원, SPC 3억 원 등 줄을 잇고 있다.
GS와 두나무,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은 각각 10억 원을 기부했다. 앞서 10억원을 기부한 신한금융그룹은 10억원의 성금을 추가로 마련해 총 20억원의 기금을 전달했다. 윤호중 hy 회장은 3억원을 냈다.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의 기부 릴레이도 이어지고 있다. 군 복무중인 BTS 정국은 10억 원을 쾌척해 연예인 개인 최고액을 기록했다. BTS 뷔 2억 원, 임영웅 4억 원, 여자아이들 5억 원, 아이유 2억 원, 태연·슬기(레드벨벳)·슈가(BTS)·이영지·차은우 등도 각 1억 원을 기부했다.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식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온정은 이처럼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정치권만 냉골이다. 상처에 할퀸 피해자의 가슴을 두 번 울리는 정치권이다. 예외없이 이번에도 ‘문제는 정치’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 시가 급한데 추경 규모를 놓고 또다시 여야가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악의 산불은 삶의 터전과 미래까지 집어삼켜 내수를 더욱 얼어붙게 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의 관세 폭격으로 경제 불확실성은 고조되고 있다. 삶의 고통은 깊어지고 경제 주름살은 늘어간다. 그런데 정치권은 산불 복구 추경마저 잿밥 챙기듯 흥정거리로 삼고 있다. 산불 피해자나 국가적 재난 앞에서도 잿밥 싸움이나 하는 몰염치함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불 등에 대응하기 위해 10조 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추진하겠다"면서 "재난·재해 대응과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3대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추경은 그 어느때보다 신속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산불로 수조 원의 피해가 발생했고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로 하향 조정할 만큼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 정치권의 몽니로 추경 집행이 지체되면 자칫 재난 구제와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간 쟁점이 없고 반드시 시급히 처리해야 될 예산만 담았다"고 처리를 요청했다. 반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쭉정이에 불과하다"며 추경의 확대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산불 피해 복구 지원과 신성장 동력 육성에 방점을 찍은 정부안에 민주당은 35조 규모의 확대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는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소비쿠폰으로 지급(13조 1000억 원)하고 지역화폐 할인을 지원(2조 원)하는 방안을 담았다.
민주당의 주장은 선심성 표퓰리즘이다. 표심을 노린 돈 풀기다. 초비상 시국 뒤에서 표계산을 하고 있다. 지금은 선심성 현금 살포 경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지난해에만 30조 8000억 원에 이르는 세수 결손으로 재정 건전성이 위협 받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필요한 곳에만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
 |
|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경북 의성군 산불 이재민 임시 대피소인 의성읍 의성체육관을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추경 성공의 관건의 타이밍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산불로 터전을 잃은 피해자와 초토화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 빠른 마중물이 필요하다. 이런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도 ‘잿밥’까지 챙기려는 드는 건 국민 고통도 국가 위기도 외면하는 처사다.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추경 편성이 늦어질수록 산불 피해자는 물론 서민과 자영업자의 고통은 커진다. 경기회복의 불씨도 되살리기 힘들어진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이번 추경을 먼저 시급하게 통과시킨 다음에 여야가 요구하는 부분은 별도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급함에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민생 안정과 경기 회복을 위해 민주당은 탄핵의 강도 멈춰야 한다. 줄탄핵과 연쇄탄핵으로 겁박하는 지금의 행태는 민심 이반을 넘어 국정마비나 다름없다. 정치 불안전성의 리스크가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악재다. 헌재가 4일 윤석열 대통령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리더의 부재로 벼랑 끝으로 몰려 있다.
이제 헌재의 판단이 어떻든 모두가 거리를 떠나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픈 역사와 갈등을 봉합하는데 이의를 두어서는 안된다.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국민들의 가슴의 재가 됐다. 제발 '잿밥'에 눈 멀어 멍든 가슴을 두 번 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산불 대응 추경은 정치적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초당적 위기 극복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이제라도 국민의 아픔을 보듬는 정치가 돼야 한다. 야당은 9대0이라는 탄핵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통제 불능의 국가 마비를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추경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 정치적 흥정놀음에 국민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 의회의 폭압을 멈춰야 한다. 욕망의 전차를 멈춰야 한다. 존재 이유조차 찾을 수 없는 국회가 그나마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국회와 정부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역시 정치다. 언제나 정치가 문제다. 국민의 분노가 국회를 향하고 있다. 인내의 임계치가 다가오고 있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