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자유주의 사상가인 복거일 소설가는 28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 “지금 우리 역사가 이렇게 편향된 결과는 느슨한 검증 과정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복 소설가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개최된 당 사무처 직원 30여명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연구모임’ 발족식에 참석, 연구모임의 첫 강연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하는데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며 “역사학은 일어난 모든 일을 다루기 때문에 방대한데 그 몸집에 비해 방법론이 취약하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재연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과학에선 일단 대조실험을 통해 어떠한 이론을 검증한다. 검증에서 탈락한 이론들은 퇴출되고 거기에서 살아남은 이론들이 점점 발전, 새로운 사실을 흡수해서 학문이 진화한다”면서 “역사학은 그렇게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복 소설가는 “이미 일어난 일들은 재연이 안되고 대조심화가 안 된다. 그래서 아무리 완벽한 이론도 100% 증명이 안 되기에 검증과정이 느슨할 수밖에 없다”며 “더 문제는 아무리 엉터리 이론도 퇴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역사는 온갖 설이 난무하고 정설이 있더라도 조금 지나면 틀림없이 수정주의적 견해가 나온다”며 이를 “검증할 만한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들이 많다. 방대한 자료들 가운데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추려 이론을 내세운다. 그러면 읽는 사람들에겐 그럴 듯하다. 그것을 반박하는 주장을 다 버렸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복 소설가는 ‘전체주의’에 대해 “지도자가 제시한 하나의 사회 목표를 위해 사회 모든 자원과 역량을 동원하는 체제”라고 설명한 뒤 전체주의체제 하에선 지도자에게 도움이 되는 역사 서술은 ‘선’이며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 서술이라도 ‘악’으로 규정되며, 그러다보니 절차의 객관성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도자의 얘기가 수시로 바뀌면 역사 서술 역시 기준이 흔들린다며 과거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의 나치 독일에 대한 역사 서술을 양국의 불가침 조약 이후 좋게 바꾸었다가 독일의 침공을 당한 후 악마화해서 서술한 점을 들면서 “스탈린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바뀐 것”이며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악한이 된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역사왜곡이 심한 사회로 소련, 중국, 북한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사회에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고,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역사왜곡이 심하다”며 심각한 역사왜곡을 바로잡을 기반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과서를 새로 쓰려고 해도 한국 역사가 조작이 많이 됐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가려낼 임무를 맡은 역사학자들이 일치단결해서 편향된 역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비판했다.

   
▲ 복거일 소설가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사무처 내 ‘올바른 역사연구모임’ 발족식에 참석, 연구모임의 첫 강연자로 나서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복 소설가는 최근 정부·여당에서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6·25 전쟁 중 미군과 국군의 양민학살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대표 사건인 ‘노근리 사건’을 좌편향 역사왜곡의 한 사례로 소개하고, 이를 ‘미군의 양민 학살’로 규정한 기존의 학설을 반박했다.

노근리 사건은 1999년 미국의 AP통신에서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29일 한국 노근리에서 미군이 한국 피난민들을 대규모 학살했다’는 보도로 알려졌다. 내용의 핵심은 미군이 피난민 수백명을 노근리로 끌고 가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보병의 무전 요청에 따라 제트기를 동원해 민간인 옷차림의 한국인 집단을 공격했다는 것이며 ‘상부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자백한 참전군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군 측이 공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피난민들은 미군의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근리로 이동했으며, 전쟁 중 북한 인민군의 민간인 위장 또는 ‘인간방패’ 전술로 인한 피해가 많았고, 당시 보병의 무전으로는 항공기와 무전이 불가능했으며 폭격에는 군단장급의 승인이 필요한데다 대다수 참전군인의 증언, 실제 발견된 사망자 수 등이 왜곡보도됐다는 점을 복 소설가는 설명했다. 수십명의 증언자가 ‘AP에서 잘못 얘기했다’고 지적한 사실도 들었다.

그는 “미군이 일부러 피난민을 쏴 죽였느냐 아니냐가 논점”이라며 “미국 조사단의 결론이 이렇다. ‘분명히 민간인 피해는 있었지만 그것은 전쟁의 부수물일 수밖에 없다. 학살 명령은 내린 적 없고 실제 쏘았다는 사람들도 학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조심스레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또 그 배경에는 미군이 북한의 위장·인간방패 작전에 따라 피난민을 경계하게 된 점이 있다고 말했다.

복 소설가는 AP통신의 보도는 사실상 거짓됐지만 통신사의 명성, 이것을 보도한 기자들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점, 이미 사회 각계에서 노근리 사건이 ‘양민 학살’로 등재된 것에 따라 이같은 왜곡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다만 노근리 사건이 교과서에 계속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인민들을 그렇게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군대와 길을 가득 메운 피난민 대책을 고민하는 군대를 놓고 얘기해야 한다”면서 “사건의 본질인 북한의 반생명적, 잔인한 전체주의 속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얘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단순히 이 사건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와 자유주의를 대조하는 관점을 지니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밖에 복 소설가는 “6·25에서 한국을 구한 3명이 있다. 트루먼 대통령, 맥아더 사령관, 또 하나는 리지웨이 장군”이라며 “앞 두 분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리지웨이 장군을 잊으면 안 된다. 고마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고 강연을 마쳤다.

한편 그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 여러분(역사연구모임)들이 이 싸움을 잘 보필하시리라 생각한다”고 참여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