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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능 국민의힘 부대변인. |
정치가 점점 ‘팔리는 말’에 종속되고 있다. 법안 하나보다 자극적인 발언 한 줄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정치의 본회의장은 짧은 쇼츠 영상으로 압축되고, 정책은 하이라이트 클립 속 배경으로 밀려난다.
정치의 존재 양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뒤틀리고 있다. 실질적 정책보다 발언의 조회수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하고, 의제의 정합성보다 영상의 전달력이 평가 기준이 된다. 정치인은 숙의의 언어를 버리고, 반응을 유도하는 콘텐츠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이 과정에서 입법자는 입법자가 아닌 기획자가 되고, 정치는 갈수록 본질보다 장면을 앞세우게 된다.
정치인의 언설은 플랫폼 문법에 맞춰 변했다. 즉흥성과 몰입감을 중시하는 구조 속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일수록 반복 노출된다. 반면, 심층적 논의는 몇초짜리 클립에 묻힌다. 정치는 설명이 아닌 선동을 택하게 되고, 대의보다 반응 속도를 좇는다. 이 과정에서 책임은 가벼워지고, 정치는 점점 정념의 소비재로 전락하고 있다.
이 흐름은 국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제22대 국회는 실질적 입법 성과는 저조했지만, 자극적인 발언 하나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정치인은 존재감을 얻었다. 조용히 수십 건의 법안을 통과시킨 의원은 외면받는다. 숙의보다 장면, 실적보다 구독자가 앞서는 구조다.
하지만 법 하나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만들어진다. 조문 하나하나엔 철학, 연구, 이해당사자 간의 타협과 조정이 담긴다. 그 과정을 견디는 정치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정치가 얼마나 본질에서 멀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건 단순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아니다. 의회민주주의가 지탱해온 숙의정치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정치 담론은 구조 설계에서 감정 동원으로 이탈했고, 진실은 점점 장면에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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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대 국회 개원식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리고 있다. 2024.9.2./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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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광우병 사태는 과학보다 공포가 앞섰고,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은 국제기준보다 반일감정 자극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등장한 ‘내란죄 없는 내란범’ 프레임 또한 감정적 파급력을 우선한 대표 사례다. 법치는 피드백 수치에 밀리고, 설명은 외면받는다.
정치는 결국 구조다. 본회의장의 발언보다 소관 상임위에서 조문 하나를 다듬는 일이 진짜 정치다. 퍼포먼스가 무대가 되고 제도가 쇼가 되는 순간, 국가는 설계가 아니라 연출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정치는 누적되어야 하고, 제도는 설계되어야 한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건 시대의 흐름을 읽는 감각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태도다. 문장 하나하나에 책임을 지는 입법, 일시적 인기를 넘어서는 구조개혁이 정치의 본령이다.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는 것과 그 흐름에 종속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감각이고, 후자는 퇴행이다.
때로는 설명이 길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쇼를 하지 않는다고 조롱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면, 정치인은 중심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중심을 지킨다는 건 박수를 받는 일이 아니라, 외면 속에서도 본질을 붙드는 일이다.
정치는 결국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감당하는 자리다. 카메라가 없을 때도 같은 태도로 움직이는 사람, 유행보다 구조를 바꾸려는 사람, 순간보다 누적된 진심으로 정책을 말하는 사람. 그런 정치인을 우리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짧을 수 없다. 요약될 수 없다. 정치는, 팔리는 말보다 책임지는 사람의 영역이어야 한다.
이재능/현 국민의힘 부대변인, 2024. 국민의힘 인천시당 대변인, 2023.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청년대표, 2023. 제12회 세계도시정상회의 시장포럼 서울시 영리더
[미디어펜=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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