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BYD를 필두로 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한국 시장 공략이 본격화하고 있다. 관세 장벽에 가로막혀 미국 진출이 어려워진 중국이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 가격과 물량을 앞세운 공세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상용차와 가전제품 시장에서처럼 중국 브랜드가 '가성비 전략'을 무기로 빠르게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한정된 고객층 사이에서 중국 브랜드 간 혈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국내 승용차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BYD를 시작으로, 지커, 창안차, 샤오펑, 립모터, 샤오미 오토 등이 한국 진출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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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D 씰./사진=BYD코리아 제공 |
◆ BYD 이어 지커·창안차·샤오펑 등 러시..."성공사례 벤치마킹"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한국 시장 공략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가장 앞서 진출한 BYD는 아토3를 출시한 데 이어, 씰과 씨라이언7 등 후속 신차를 연이어 선보이며 국내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빠른 제품 주기를 앞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전기차 라인업을 다각화해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전략이다.
중국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법인 설립과 상표권 등록을 마치고 연내 공식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임현기 전 아우디코리아 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하고, △KCC오토그룹 △극동유화그룹 △아이언모터스 △에이치모터스 등 4개 딜러사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지커는 현재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호주, 남미 등 글로벌 40여개국에 진출했으며 왜건형 모델 '001', 세단 '007', 소형 SUV 'X', 중형 SUV '7X' 등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초기 출시 모델로는 슈팅 브레이크형 전기차 '001'과 중형 SUV '7X'가 유력하다.
중국 5대 완성차 브랜드 중 하나인 창안차도 한국법인 설립을 목표로 최고경영자(CEO)급 인력 채용에 착수했다. 다수의 수입차 고위 임원들이 창안차 한국 사업 책임자 자리를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브랜드 디팔과 아바타를 통해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공격적으로 시장을 파고들 전망이다.
신생 전기차 브랜드 샤오펑은 중형 전기 세단 P7을 주력 모델로 삼고 있으며, '중국의 테슬라'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자율주행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샤오펑은 총판 계약을 통한 간접 진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립모터와 샤오미 오토 역시 한국 시장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들은 한국에 정착한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로보락'이 있다. 2014년 샤오미의 지원으로 설립된 로보락은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중국 브랜드다.
BYD 관계자는 "중국 제품은 대부분 저가 가성비 제품 위주의 인식이 강하다"면서도 "로보락처럼 기술력으로 인정받아 시장에 안착한 사례가 있기에 이를 롤모델로 삼아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내 완성차업계 위기감 고조…중견 3사 흔드는 중국발 공습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의 대규모 진출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 특히 중견 3사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BYD, 지커 등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 분야에서 이미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겸비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반면 제너럴모터스(GM), KG모빌리티(KGM), 르노코리아 등은 전기차 전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 트렌드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중국 브랜드들은 초기에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상용차나 가전제품 시장에 침투해 점유율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브랜드의 공세는 단기적인 시장 점유율 경쟁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지형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업계가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 강화는 물론, 가격대별 제품 전략과 충전 인프라 확충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국면을 맞은 가운데,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한국 시장에 저가 중국 전기차가 대거 유입되면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과 수익성 방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 브랜드가 모든 고객층을 대상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보다는, 차량 구매 시 가격을 중시하는 일부 소비자층이나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브랜드가 일정 부분 시장 점유율을 가져갈 가능성은 있지만,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보다는 B2B(기업 간 거래) 시장과 차량 가격을 가장 중요시하는 일부 고객층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며 "한정된 고객층을 대상으로 오히려 한국 시장 내에서 중국 브랜드 간 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국내 시장 안착?..."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중국 브랜드들의 국내 시장 침투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에 성공한다면 현대차와 기아에 잠재적 위협을 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수입차들의 국내 안착이 쉽지 않은 점으로 서비스망 및 부품 수급 체계의 완비가 어렵다는 점과 중고차 시장에서 가격 방어가 쉽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은 국내에 중고차 시장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중고차 가격은 브랜드 인지도, 차량 내구성, 서비스망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신생 브랜드이거나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는 잔존가치 방어가 어렵다.
BYD의 경우에도 이를 인지하고 전국적으로 서비스센터를 늘려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서비스센터 확보가 쉽지 만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차가 고급브랜드인 경우 고객들이 감수할 수 있는 인내심도 더 큰 반면, 저가 브랜드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것은 물론 서비스센터의 이득도 적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기차는 출시 초기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만큼 재판매 시 감가폭이 일반 내연기관 차량이나 기존 글로벌 브랜드 전기차 대비 훨씬 커질 수 있다. 수요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차량을 중고로 처분하려는 경우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거나 심지어 거래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차를 자주 바꾸는 고객들은 중고차의 잔존 가치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차를 자주 바꾸지 않는 고객은 반대로 좀 더 안정적인 브랜드 선호 경향이 높다. 유럽 브랜드들도 중고차 감가 비용이 큰 만큼 중국 브랜드의 중고차 가격 방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호근 교수는 "초기에는 가격이 저렴해서 소비자들이 솔깃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발생이나 고장 시에 부품 수급이나 서비스망 미비로 불편이 생길 수 있고, 리콜 대응 역시 국내 완성차업체에 비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중국 중고차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수년 내 재판매 시 예상보다 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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