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공약만 있고 돈 버는 공약이 없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공감도 감동도 없다. 6·3 대선이 21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들이 내건 공약을 보면 그야말로 포퓰리즘이자 표를 구걸(?)하는 ‘표퓰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돈 쓰겠다는 공약만 있고 돈 버는 공약은 없다.
대책없는 퍼주기 공약이 국가 비상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에서 난무한다. 일단 표를 얻고 보자는 심산이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재원 조달 계획은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명확한 게 없다. 미래 비전도 없다. 웬만한 세미나에서 나올 법한 내용들이 버젓이 공약으로 자리했다.
현실적 고민의 흔적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눈에 보이는 현안을 재탕삼탕 하고 있다. 문구를 바꾸고 문자를 등장시켜 새로운 발견인양 대선 공약으로 들이밀고 있다.
수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규제의 장벽에 가로막혀 기업의 등을 떠미는 오랜 과제도, 이들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마법 같은 주문을 소리 높여 외친다. 여전히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이라는 걸 자인하는 걸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보면 퍼주기 일색이다. 나라를 살리는 게 아니라 나라를 거덜 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대선이라지만 ‘준비된 리더’의 자세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시대의 흐름으로 자라잡은 ‘인공지능(AI)·반도체 강국’은 누구나 꿈꾼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2일 경기 동탄 유세 중 '세계 1위 반도체 강국 도약'이라는 구호가 적힌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였다. 김문수 후보도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AI 전 주기 생태계 조성과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한 원자력발전 비중 확대를 약속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AI 산업의 근간인 데이터센터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재명·김문수 후보는 AI 분야 100조 원 규모의 재원은 투자 계획이나 민관펀드 조성을 통해 이루겠다고 밝혔다. 현실은 냉엄하다. AI 강국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산업은 대외적으로는 대만에 뒤처지고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대내적으로는 규제의 장벽에 갇혀 있다. 현실은 외면한 채 ‘장밋빛 구호’만을 외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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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사진 왼쪽부터)가 대전 으능정이거리 스카이로드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AI·반도체 강국 얘기하면서 규제 해결책은 없어
다른 모든 공약은 차치하고라도 후보들이 앞다퉈 내세우는 ‘AI·반도체 강국’은 갈 길이 멀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목이 잡혀 반도체 연구실은 산학연 모두 불이 꺼졌다. 재원도 계획도 모호한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상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주52시간제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 가로막혀 있다. 거대 야당이 민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말로만 AI·반도체를 외치면서 실상은 족쇄를 풀어 주지 않고 있다. 주52시간 외에도 대학과 연구소는 전력이 부족해 AI서버를 가동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전기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전력자급률은 경북 216%, 충남 214%, 강원 213% 등 일부 지역은 200%가 넘는다. 문제를 전력을 실어 나르는 인프라인 송전망이다. 현재 송전망을 깔려면 관련 설비가 들어서는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헌데 이게 녹록치 않다. 대표적으로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사업이 그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사업은 신형 원전 6기에 해당하는 전력인 8GW를 울진에서 경기 하남까지 이어 서울·경기 지역으로 가져오는 사업이다. 당초 2019년 마무리됐어야 하지만 주민 반발에 발목이 잡혀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다.
현재 한전은 송전탑 436개가 들어서는 79개 마을의 동의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하남시의 반대에 막혀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남시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2026년 6월로 잡혀 있는 현재의 준공 목표도 지키기 힘들다. 전자파 괴담 불식을 위해 한전은 견학과 과학적 수치를 근거로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미완이다.
단편적인 예만 들었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AI와 반도체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수년간 기본 인프라조차 구축하지 못해 불 꺼진 연구소의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후보들은 천문학적 돈 풀기로 표심을 유혹할 것이 아니라 기본을 바꾸고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AI·반도체 강국’은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재원 계획조차 없이 제시되는 숫자놀음이나 하는 것은 무책임 하다. 나아가 지키지 못할 공약이 될 것이다. 먼저 송전망 해결과 주52시간제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 제정 등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에 귀 기울려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조의 눈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전에서 ‘우클릭’ 행보를 하며 한국판 ‘흑묘백묘론’을 강조하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경우 더욱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그의 말이 선거용 수사가 아니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먼저 민주당이 줄대기 시켜 놓고 있는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주4.5일제 도입 등 기업 발목 잡는 입법부터 폐기해야 한다.
국내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3% 역성장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한 19개 국가 중 꼴찌다. 투자은행 8곳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0.8%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퓰리즘 경쟁만 있고 정책 승부없는 '맹탕 대선'
상황은 백척간두인데 대선 후보들의 성장 해법은 모호하고 선심성 공약은 선명하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내건 아동수당 지급 18세까지 연장, 농업인 퇴직연금제, 간병비 부담 완화 등 공약을 이행하려면 임기 중 약 100조 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문수 후보의 법인세·상속세율 인하,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가 시행되면 5년간 70조 원의 세수 공백이 예상된다. 지난 2년간 세수 결손액은 87조 원이었다.
모두가 미래성장동력의 장밋빛을 내세우며 포퓰리즘으로 선동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으로 나랏빚은 급격하게 늘어 가고 있다. 203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9.2%로 전망됐다. 비기축통화국 중 체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상승폭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천문학적 돈풀기 공약을 내세우며 재정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건다. 빚내서 하는 장사라면 누군들 못할까.
트럼프의 관세전쟁으로 세계경제는 불확실성으로 요동치고 있다. 수출은 막히고 내수는 졸아들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악재 투성이다. 나라의 미래가 달린 중대기로에서 공허한 구호로 표심을 유혹 해서는 안된다.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은 ‘퍼주기’가 아니라 경제 체력을 회복 시킬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
어느 후보가 치열하게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는지 유권자들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재원 대책 없는 공수표 같은 공약은 모두 미래세대의 짐이다. 그래서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이 될지를 눈 크게 뜨고 지켜 봐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포퓰리즘의 결말은 남미의 눈물이 증언하고 있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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