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글로벌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가 최근 경기 침체와 미국의 기조 변화 등으로 인한 수요 부진에 성장이 둔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실물경제 부진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시장 성장이 정체되는 등 캐즘(Chasm)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주요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들은 뒤쳐질세라 수조 원대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6.1% 성장했으며,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2024년에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고 한다.

프레시던스 리서치 등 시장 전망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향후 5~10년 간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17~1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2030년 EV용 배터리 시장은 올해와 비교해 무려 2.4배로 커지게 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가능성과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인해 예상보다 성장이 둔화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의 큰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실행 및 계획 중인 대미국 투자 규모는 총 540억 달러(약 75조 원)에 달하며,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지난해 1조 원대의 연구개발비를 집행해 기술경쟁력 향상에 집중하는 등 포스트 캐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의 1.1조 원 유상증자가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SDI,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조 단위가 넘는 유상증자다. 글로벌 실물경제 부진과 함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온 유상증자라 시장에서 볼멘소리도 나온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이 시기에 불어온 맞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2022년 1659억 원에서 2023년 359억 원, 2024년에는 7억 원으로 감소했다. 오히려 영업적자를 내고 있는 다른 배터리소재 및 배터리 기업들에 비하면 오히려 선방하고 있는 수준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공급망 독립을 위한 음극재 구형흑연 투자,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포항‧광양 및 캐나다 양극재 투자 완결 및 제조 경쟁력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캐즘 이후 찾아올 배터리 슈퍼사이클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제조업은 일반적으로 사이클 산업이 대부분이다. 골이 깊을수록 산등성이도 높기 마련이다. 제조업에서 적절한 투자 시기는 ‘불황’이란 말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업력이 길지 않고, 아직 꽃을 만개할 수준으로 산업이 고도화 되지 않았기에 돈을 벌어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투자를 위해선 유상증자 등 외부 유치를 해야 하는데 소액주주로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 포스코퓨처엠 광양 양극재 공장./사진=포스코퓨처엠 제공

포스코퓨처엠은 소액주주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 회사채, 신디케이트론 등 자력 자금 조달 방안을 실시하며 신평사들이 요구하는 재무지표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앤오케미칼 지분, 구미 양극재공장 등을 매각하는 자구책도 선행했다.

포스코퓨처엠의 59.7%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 포스코홀딩스 역시 이번 유상증자에 대해 책임경영 측면에서 참여에 나선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캐즘 이후 시장의 본격 성장에 대비해 사업회사 투자사업을 완결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그룹 이차전지소재 사업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퓨처엠,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의 유상증자에 각각 5256억 원, 3280억 원, 690억 원 등 총 1조 원 규모의 증자를 실행해 그룹의 이차전지소재 사업에 대한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산악 지대에서 시작된 한줄기의 하천은 강이 되어 이윽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류 지역의 물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여정은 길고 험난하지만 큰 물 줄기가 된 강과 하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기 마련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도 마찬가지다. 이미 시작된 물줄기를 막을 방도는 없다. 바다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의 과정이 있을지언정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 

기존의 산업이 건재한 상황 속에서 필요에 의해 발생한 산업이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서 신재생에너지를 공약으로 다시 내세우고 있는 만큼, 기대가 다시 모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 기업들이 이 시기에 앞 다퉈 투자하는 것도 이후 불어올 슈퍼 사이클이라는 순풍에 올라탈 체력을 준비하기 위함으로 해석해야 한다. 맞바람을 이겨낸 선박이 순풍을 타고, 거센 바람을 이겨낸 나무가 달콤한 과실을 맺기 마련이다. 투자자들에겐 기다림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다만 성토의 목소리보다 업계의 발전을 위한 독려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 
[미디어펜=문수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