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선정으로 지상파 독주시대 마감
이명박 정부가 2008년 2월 24일에 출범한 이래 방송통신분야 최대 이슈메이커였던 최시중방통위원장이 지난 22일 퇴임식을 갖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최위원장이 최대 뉴스관심사였다는 것은 그와 관련한 뉴스생산량에서도 드러난다. 네이버뉴스검색결과 MB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24일부터 2012년 2월 24일까지 만4년간 최시중관련 기사는 46,323건에 달했다. 

이러한 숫자는 방송계 인사인 김인규 KBS사장(10,946), 김재철 MBC사장(11,134), 통신업계 이석채KT회장 (24,661), 정만원 SKT전사장(11,768), 이상철LGU+부회장(9,406) 등과 비교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정동영의원(45,759건), 문재인전비서실장(23,648건) 등 유력한 대권주자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았다.  방송위원회시절 국민들은 방송위원회가 어디가 붙었는지 뭘하는 곳인줄 몰랐던 것과 비교한다면 방통위는 4년내내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최시중 전방통위원장
▲최시중 前 방통위원장 ⓒ미디어펜


그런데 최위원장이  이슈의 중심에 선 이유는 칭찬보다는 비판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사퇴선언후 최시중위원장에 대해 언론은  "IT 경쟁력을 한 단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디지털데일리), "우리나라 방송과 언론 환경은 황폐화됐다"(디지털타임스)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체로 부정적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최시중4년을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 1월 27일 사퇴기자회견에서 최위원장이 "궁극적인 평가는 국민들과 역사에 맡기겠다"고 말한 것처럼 지난 4년의 평가는 단기적인 사건으로서 판단하기보다 향후 진행되는 미디어업계 발전상황을 보고 판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초대 방통위원장으로서 그는 방통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끝까지 그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퇴임식에서 참았던 눈물을 여러번 흘리고 말았다.


▲ 방송

방통위를 출입하는 모매체 기자는 최시중위원장이 잘한 것은 방송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KBS의 여당추천 A이사는 최시중위원장은 임기동안 방송을 정치적 관점에서 산업적 관점으로 전환시켰다라고 평가했다.

방송시장에 종편을 도입함으로서 지상파3사 독주체계에서 경쟁체계로 전이를 촉진시켰다는 얘기다. 최시중위원장을 '종편의아버지'라고 별칭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닐 정도로 최시중하면 종편이 떠오른다. 종편의 효과가 아직 미미하지만 마치 미꾸라지만 있는 논바닥에 메기를 집어넣음으로서 상호 이익이 되는 구도가 될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송광고시장에서 지상파 점유율 추세(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소, 2011, 방통위)
▲방송광고시장에서 지상파 점유율 추세(방송산업실태조사보고소, 2011, 방통위), 지상파점유율이 서서히 하락하고 있으나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 한가지 호평을 받는 부분은 위원회 운영을 큰 잡음없이 이끌었다는 부분이다. 종편선정을 전후한 시기에 야당추천 상임위원들이 수차례 회의진행을 보이콧한 것과 진주,창원 MBC 통폐합건 처리시 야당측 위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 등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큰 잡음없이 위원회가 운영되었다. 업계 관계자도 최위원장이 거중조정하는 위원회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며 무난하게 위원회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논란이 생기는 것을 회피한 나머지 단호한 정책결정이 부족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시민단체와 학계 등에서 우리나라 광고시장에서 종편의 개수는 1개가 적당하며 많아야 2개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조중동을 모두 만족시키느라 종편사업자를 4개나 선정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광고시장이 교란되고 언론사들의 생존환경이  매우 열약해졌다.  최위원장이 자주 사용했던 소위 '미디어빅뱅'이 가속화 되고 있다.

위원회 운영에서도 단호함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 마산,창원 MBC통폐합 건의 경우 안건처리기간이 10개월이상 걸리며 1기에서 2기에 걸쳐 처리되었다. 지상파재전송문제도 지상파측이 2009년 11월 5대 MSO를 상대로 저작권소송을 제기했음에도 2년이 지난 현재도 제도개선안을 처리못하고 있다. 


▲ 통신

방통위에서 방송분야에 종편이 있다면 통신에는 와이브로 제4이동통신이 있었다. 와이브로는 삼성 등이 세계에서 최대 특허를 소유한 토종 이동통신기술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사업자선정을 하지 못했다. KMI는 3번, IST는 1번 탈락했다. 주요한 탈락이유는 재무건정성 문제였다. 전국망을 구축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2조5천억이상 소요되는 거대 프로젝트이므로 대기업참여가 절실하지만 사업전망 등이 불투명하다는 판단하에 대기업들은 참여를 꺼리고 있다. 제4이통 사업자를 유인할 인센티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인터넷

최시중위원장은 퇴임식에서 "특히 인터넷의 제한적 본인확인제(이하 실명제)를 폐지하기로 정책방향을 잡았으나 완결하지 못하고 떠난다"며 방통위가 잘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 만큼 최시중위원장이 아쉬움을 표했지만 임기중 실명제를 폐지하지 못했다. 

실명제는 이미 노무현정권이 도입한 법이다. 2007년 6월 28일부터 하루 평균 방문자수가 20만 명 이상인 언론사와 30만명 이상인 포털 사이트에 대해 적용했다. 하지만 광우병사태로 혼쭐이 난 MB정부와 방통위가 2009년 1월부터 10만명이상 모든 사이트로 대상을 확대하였다.

그러자 정권보호차원에서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난을 받았고 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망명을 통해 구글 등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싸이월드대신 실명제가 필요없는 SNS서비스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국내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국내업체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한 정책이 풍선효과에 의해 대체 서비스를 통해 표출되었으며 이는 젊은 유권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투표참여를 하게 되었다.  결국 MB정부는 국내사이트에서 젊은 표심의 재갈물리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외국산 SNS를 통해 표심이 표출되며 정권이 역풍을 맞았다.

최시중위원장의 방송,통신,인터넷 정책중 가장 시대를 거스른 정책이 결국 실명제정책이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