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등 핵심 이슈를 두고 본격적인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2019년 이후 이어온 '6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 올해는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과 국회의 법 개정 움직임이 맞물리며 노조의 요구 강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고율 관세와 전기차 수요 둔화 등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노사가 일방적 주장보다 현실적인 타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사는 오는 18일 상견례를 열고 본격적인 임단협 교섭에 돌입할 예정이다. 올해 노조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900% 인상 외에도 △주 4.5일제(금요일 근무 4시간 단축)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직전까지, 최장 64세로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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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기아 양재사옥./사진=현대차그룹 제공 |
이번 임단협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단연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다. 두 사안 모두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데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어 노조의 주장에 일정 부분 정책적 명분이 실릴 수 있다.
국회에는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내용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60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로, 2028년부터 2032년까지는 64세로, 이후에는 65세로 상향하는 법안부터 다자녀 가구에 한해 연장을 허용하거나 사업장 규모별로 적용 시기를 차등하자는 안까지 다양한 형태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며, 통과되더라도 사업장별 적용은 법 제정 및 시행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현 시점에서는 제도화 가능성이 열려 있으나,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년 문제는 청년 고용, 임금 체계, 기업 부담 등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사회적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내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올해 임단협에서 법 제도화 전에 4.5일제와 정년연장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올해 임단협에는 정년과 노동시간 외에도 금전적 요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노조는 대법원이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인정한 점을 근거로 조합원 1인당 2000만 원(총 8200억 원 규모)의 통상임금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판결은 소급 적용 대상을 소송 당사자로 한정한 만큼 사측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년 연장과 노동시간 단축은 이미 사회적 논의가 진전 중인 만큼 제도화 가능성은 있지만 시기적으로 이른감이 있고, 위로금이나 임금 인상은 사측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며 "이 같은 고강도 요구가 지속될 경우 현대차의 경영 안정성은 물론 국내 자동차산업 전체의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요구 사항 외에도 최근 자동차 업황은 위기 상황이어서 이를 감안하면 사측에서는 노조 측 입장을 적극 수용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와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라는 외부 악재까지 겹치며 현대차의 경영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실제 올해 1∼4월 아이오닉5의 해외 판매는 전년 대비 65% 급감했고, 울산 전기차 라인은 잇따라 가동을 멈췄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내 자동차 수출은 116만8338대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으며, 생산도 1.9% 줄었다.
볼보나 폭스바겐, 닛산, 스텔란티스 같은 글로벌 완성차들은 구조조정을 행하고 있다. 지난해 큰 적자를 본 닛산은 2만 명에 가까운 직원을 구조조정할 계획이고, 공장도 17곳에서 10곳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 역시 3만5000명에 달하는 인원을 구조조정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스텔란티스와 볼보 역시 상당수의 인원을 정리한다.
이는 미국 최근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미국 고관세 지정으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러한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는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데 업황과 거꾸로 가는 정책을 요구하는 노조의 요구안을 그대로 들어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임단협 결과가 기아,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의 협상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노조가 업황 악화와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대승적 협상 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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