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화학업계 "원가 부담 커져"…수요 위축 이중고
해운 "운임 오르지만 수익은 글쎄"…우회항로 검토도
중동 수출·수주 타격 우려…정부, 상황점검회의 소집
[미디어펜=김연지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시설을 전격 타격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속히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에도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과 해상 물류 불확실성 확대, 중동 수출 타격 가능성까지 겹치며 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 공습(12일) 이후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에 나서면서 중동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유가 상승과 운임 부담, 장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산업계 피해가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3개 핵 시설에 대한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완료했다"고 밝혔으며,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란이 보복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전 세계 원유 수급에 심각한 충격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평균 2000만 배럴로, 이는 세계 원유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 2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 내 TV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시설 공습 관련 대국민 연설이 방송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는 유가 급등에 따른 원가 압박과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달러로 원유를 수입하기 때문에 유가가 급등하면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석유화학 업계도 수요 둔화와 원재료 가격 상승이 겹칠 경우 마진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로 오는 원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는데 이곳이 폐쇄되면 공급 차질과 유가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며 "이란 원유를 공급받는 중국, 인도 역시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유가가 더 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13일 기준 배럴당 74.23달러였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0일 76.84달러로 상승했고, 브렌트유도 74.23달러에서 77.01달러로 올랐다. 서울 휘발유 가격은 지난 21일 1721원을 넘어서는 등 국내 유가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중동 항로를 오가는 국내 해운업계도 간접 피해가 우려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35%, LNG의 33%가 통과하는 전략 요충지로 한국으로 오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곳을 거친다.

최근에는 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이 의심되는 유조선 충돌 사고도 발생해 안전 우려가 커졌고, 일부 선사는 항로 조정에 나섰다. 국내 선사들도 이란·이스라엘 기착은 없지만, 해협 봉쇄에 대비해 우회 노선을 검토 중이다.

운임이 상승하더라도 유가나 보험료 등 부대비용까지 함께 늘어나 수익성이 반드시 개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진단이다.

항공업계는 홍해 사태 이후 인천~텔아비브 노선을 이미 중단한 상태라 직접 영향은 적은 상황이다. 건설업계도 과거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이후 이란에서 철수한 기업이 많아 당장 큰 타격은 없지만, 현지에 남아있던 일부 인력은 이미 제3국으로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업계 전반적으로는 사태 장기화 시 한국의 중동 수출과 수주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트라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너지 시설 타격으로 인한 비용 상승과, UAE·사우디의 방위비 증가로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종합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에너지, 무역, 공급망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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