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확대·내수 침체에 해외 부진까지…정부 차원 대응 절실
현대차그룹 "자동차산업, 경제 중추 역할…정부 전략적 지원 필요"
[미디어펜=김연지 기자]하반기로 접어들며 자동차산업의 시계(視界)가 더욱 흐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수요 둔화와 내수시장 위축, 해외 판매 부진이 겹치면서 산업 전반이 복합 위기에 놓인 모습이다. 특히 유럽·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가 줄고, 국내에선 수입차 공세가 거세지며 완성차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자동차 부품 품목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마련했다. 오는 7월 1일부터 미국 내 부품업체들은 관세 부과를 원하는 부품을 제안할 수 있으며, 이 제도는 매년 1월·4월·7월·10월 정기적으로 운영된다.

이미 엔진·변속기·파워트레인·전자부품 등에 추가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상 품목이 더 늘어날 경우, 한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미국 내 조립공장은 물론 국내 부품업계 전반의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경기도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 출고 대기 중인 차량이 주차돼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관세 직격탄…"우려 넘어 실적에 반영되는 단계"

관세 여파는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올해 1∼5월 유럽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한 44만5569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유럽 전체 시장은 0.1% 성장했으나, 현대차와 기아의 점유율은 각각 3.9%, 4.1%로 전년보다 하락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생산해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물량도 대폭 감소했다. 현대차가 지난달 미국 앨라배마공장(HMMA)에서 생산해 수출한 물량은 총 14대에 그쳤다. 전년 동월(1303대)보다 98.9% 줄어든 수준으로 전월(2386대)과 대비 99.4% 급감했다. 공급망 재조정 차원이라는 해석이 따르지만, 최근 글로벌 무역 정책 변화와 맞물리며 전반적인 수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본 토요타는 관세 시행 두 달 만에 약 12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공급망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자동차업계 특성상 이 같은 사례는 한국 완성차업계에도 현실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실적에 반영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관세발 피해가 현실화하면서 자동차업계는 점차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고 있다. 페라리, 볼보, BMW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일찍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반면 현대차 등 대중 브랜드는 가격 동결을 고수하며 눈치싸움을 벌여왔다. 하지만 최근 토요타, 미쓰비시 등 일본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공식화했고, 현대차 역시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상호관세 유예 종료 임박…트럼프의 선택은?

업계의 시선은 다음달 8일로 예정된 한·미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점에 집중되고 있다. 유예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미국과 한국 간 상호 보복 관세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 완성차업계 입장에서는 관세 부담이 즉각적인 손익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백악관은 유예 연장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4월 9일 한국을 포함한 56개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해 차등화된 상호관세를 발효한 바 있다. 그러나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해 90일 유예 결정을 내리며 국제사회 반발을 일부 진화했다.

현재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들과 관세율, 무역 불균형, 비관세 장벽 해소 등을 주제로 고위급 통상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핵심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관세 충돌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11일 "협상 시한을 연장할 용의는 있지만 반드시 연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전략이라는 해석이 우세하지만, 업계에서는 유예 조치가 실제 종료된다면 향후 수개월 간 수출 채널 전체에 타격을 전망하며 관세 유예 연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자동차산업 '흐림'…수출·고용 동반 위축 우려

대한상공회의소가 11개 업종별 협회·단체와 함께 진행한 '2025년 하반기 산업기상도'에서 자동차산업은 철강·석유화학·기계·건설 등과 함께 '흐림'으로 분류됐다. 보고서는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현지 신차 가격이 상승하고 수요가 위축되면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해외 신공장 가동에 따른 생산 조정과 국내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하반기 경영 여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산업은 약 150만 명의 직·간접 고용을 창출하는 국가 핵심 산업으로,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는 정부의 통상 협상 강화와 함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그룹은 정책적 골든타임이 도래했음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은 지난해 기준 수출 2365 억달러, 약 150만 명의 고용, 연간 42조 원의 세수 기여 등으로 국가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며 "미래차 전환과 통상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남훈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 회장도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산업을 아우르는 '산업의 산업'으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책적 뒷받침이 없다면 제조업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