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강력한 부동산 대출 규제로 시장이 ‘관망’ 모드로 돌아섰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아파트 거래량이 반토막이 났고 건설 불황에 건설사들은 미뤄뒀던 공급을 다시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정부가 이번 ‘맛보기’ 규제에 더해 향후 더욱 강한 부동산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보니 시장은 위축됐고 여력이 없는 건설사들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가 미지수라는 점이다. 또 집값과는 별도로 건설업 활성화를 통한 경기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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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이 관망 모드로 돌입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줄어든 주담대 규모…전세대출도 억제 움직임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은행권 서울지역 일평균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청액은 3500억 원대로 집계됐다. 직전 주(6월 23~27일) 7400억 원 대비 52.7% 감소한 수치다.
이는 지난달 27일 정부가 고강도 대출 규제 발표 후 다음날부터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주담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는 한편 다주택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0%를 적용해 신규 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또한 집주인의 생활안정목적 주택담보대출도 1억 원으로 제한했다.
또한 주택 구매 후 6개월 이내 전입해야 해 사실상 갭투자도 막았다. 여기에 이전 정부부터 예고했던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이달부터 시행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주담대 문턱이 높아졌다.
정부가 이처럼 전례 없는 강력한 대출 규제 시행에 나선 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마포구 등에서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았다. 대책 발표 직전인 6월 셋째 주(16일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20주 연속 상승하며 6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여기에 정부는 전세대출까지 손을 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전세대출 이자 상환분을 DSR 규제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6.27 대책 발표 이후에도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경우라는 전제가 붙지만, 이같은 조치가 시행될 경우 주택 매매 시 갭투자가 어려워지게 된다. 갭투자는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고 집주인이 해당 보증금으로 집값의 상당부분을 메우는 레버리지 방식이다.
◆일단 진정세 찾은 부동산 시장, 지켜보기 돌입
집값을 진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일단 효과를 보고 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대출 규제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1주일간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총 577건이 거래돼 직전 일주일인 지난달 20∼26일의 1629건보다 1052건(64.6%) 줄었다. 같은 기간 강남3구 거래량은 송파구 24건→1건, 서초구 15건→1건, 강남구 76건→24건으로 각각 95.8%, 93.3%, 68.4% 감소했다.
거래량 감소는 물론 거래가 하락도 목격되고 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매도 호가를 내리거나 하락거래가 신고됐다.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전용 78.77㎡가 지난 4일 36억6000만 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호가가 42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6억 가량 인하된 액수다.
당분간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지켜보기'가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 지역 내 한 공인중개사는 "돈이 급한 이들은 가격 하락을 감수하고 내놓고 있다"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관찰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정부가 원하는 부동산 하향 추세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고 있다. 대출을 막아 눌러놓은 수요가 언제든 다시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가 단기적 효과는 있다"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6월 다섯째 주(30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6·27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직전 주 0.43%에서 0.40%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성동구(0.99%→0.89%)와 마포구(0.98%→0.85%)는 여전히 0.8%대 상승폭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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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 규제로 인해 올 하반기부터 수도권 청약 성적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
◆대출규제, 분양시장도 영향…건설사들, 공급 미루기
대출 규제는 분양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청약을 하려고 해도 중도금과 잔금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분양대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까지 금지된 상황이다.
이에따라 올 하반기부터 건설사들이 공급하는 단지들의 청약 성적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칫 미분양된다면 건설사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인해 그나마 괜찮던 수도권 분양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공사비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를 낮출 수도 없는 만큼 건설사로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때문에 건설사들은 대출 규제 영향을 피하고자 분양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국 분양 예정 아파트 중 아직 구체적인 분양 시점을 확정하지 않은 '월미정' 물량은 2만7265가구에 달한다. 전체 공급물량 13만8000가구의 약 20%에 달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하반기 분양 물량을 아예 내년으로 연기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분양 물량이 축소되거나 미분양 증가 시 현재 간신히 보릿고개를 넘기고 있는 건설사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그러잖아도 폐업이 늘고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건설업은 전면적인 구조조정 시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쓰러진다면 향후 시장에서 원하는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할 능력이 사라지거나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한 건자재·철물·인테리어 등 여러 후방산업과 연결된 건설업 침체는 내수 산업 침체로 확장될 여지가 크다. 그렇잖아도 미국의 관세 부과 정책으로 인해 수출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내수 침체는 우리나라 경제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적극적인 건설업 진흥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엄근용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경기 침체가 경기회복을 제약하고 있으며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의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건설산업 회복을 통한 내수경기 활성화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재정지원 확대와 함께 수요 침체 개선, 규제·제도 합리화 등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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