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전기차 보급 중심의 정책이 현장에서는 충전 문제, 화재 사고 등 실사용 이슈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급 위주의 보조금 제도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제도 설계 역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장 문제 해결과 함께, 각 부처 간 분절적 대응을 넘어선 범정부 차원의 통합 대응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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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최영석 한라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공학부 교수와 이광범 전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이 지난 9일 제주 신화월드에서 열린 국제 e-모빌리티 엑스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김연지 기 |
◆ "사고 후 책임소재 모호"…범정부 컨트롤타워 필요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등 사고 발생 시 명확한 책임 주체가 없고, 관련 부처 간 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술·제도·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범정부 차원의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영석 원주한라대학교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 충전기, 건물 사이에 책임을 미루는 구조만 반복된다"며 "전기차 화재, 충전, 보조금, 공동주택 규약까지 주무부처가 제각각인데 정작 문제 발생 시 누구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화재와 보급, 충전 인프라 등 다양한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부처가 있으면 더욱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광범 전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도 "단순히 화재 안전뿐 아니라 전기차 보급, 충전 인프라, 자율주행 등도 다 마찬가지"라며 "한 개 부처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복합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한 개 부처에서 담당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 "설치보다 운영"…공급 정책, 현장성 결여
보조금 중심의 공급 확대 전략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특히 충전 인프라의 경우 설치 실적만 집계되고, 실사용 여부나 운영 효율은 반영되지 않아 정책 방향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최 교수는 "보조금 제도는 2015년 기준에 머물러 있다. 그 기준으로는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보급 중심에서 상업화로 정책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보조금도, 충전기 보조금도 최근 2~3년간 집행률이 저조하다. 설치 실적보다 실제 운영성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부원장은 "전기차 충전도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상업용 충전소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서 "주유소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전기차 충전소가 들어가게 된다면 주거 지역에서 발생하는 충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 인프라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 "충전 분쟁의 본질은 주차…제도 정비 시급"
전기차 충전기 설치 확대에 따른 분쟁의 근본 원인은 '주차 공간'에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집합건물에 대해서 현재는 가구당 1.3대의 주차면을 제공하게 돼 있는데 한국은 수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도 본인 주차면이 없는 구조"라면서 "충전기를 설치하면 분쟁이 생기고, 관리 주체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아파트 분양 시 주차면을 함께 배정하고, 일본은 차고지를 확보해야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 미국 동부 비싼 지역에서는 주차장을 따로 판매한다"면서 "가구당 주차면을 고정 배정하면 충전 갈등의 90%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금은 충전기도 주차 자리도 공동이라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 하다"며 "고정된 주차 자리가 생기면 충전 인프라는 각자의 권한으로 설치한 뒤 관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전기차 사용자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고, 좀 더 안전에 신경써 시설을 설치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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