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술 개발 완료했지만 적용 사례 부족
KC-1 실패 전례에 선사들 여전히 ‘GTT 선호’
정부 지원으로 국산 화물창 신뢰 확보 나서야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최근 중국이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독자 화물창 기술의 상용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SK Prism Agility LNG 수송선. 사진=SK이노베이션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상하이 창싱 섬에 LNG 운반선 중심의 첨단 조선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고급 해양장비 중심의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해당 클러스터는 기존 창싱 섬 내 조선소를 증강해  글로벌 조선 산업의 주도권을 재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LNG선 분야의 경우 지난해 기준 한국은 글로벌 수주의 62%를 차지하며 현재까지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38%는 모두 중국이 점유했을 뿐 아니라 2018년 약 10% 점유율에서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내 조선소를 추격하는 분위기다. 

비록 중국의 경우 수주 물량이 자국 내 기업으로 한정적이긴 하지만, 가격 경쟁력과 더불어 기술 경쟁력이 갖춰졌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국내 조선업계에겐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계는 LNG선이라는 ‘프리미엄 무기’를 사수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수적인 상황에 놓였다.

◆ 국산 화물창 기술, 개선 완료 불구 '20여년' 동안 빛 못 봐

글로벌 친환성 선박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산 LNG선의 핵심 설비인 화물창 기술은 여전히 프랑스 GTT(Gaztransport & Technigaz)에 의존하고 있다. GTT는 멤브레인형 화물창 설계 기술을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며 사용료만 선박 1척당 약 90억~100억 원에 달해 국내 조선사의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멤브레인형 화물창은 기존 모스형과 달리 선박의 선체 구조와 일체형으로 설계돼 공간 활용이 효율적이고 무게가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국산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형 LNG 화물창 KC-1 개발은 프랑스에 대한 기술 종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책 과제로 2004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KC-1의 야심찬 출발은 설계‧제작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는 이때 KC-1 기술 실증 이후 GTT 의존 탈피를 목표로 각각 독자 화물창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대중공업은 하이멕스(HiMEX), 삼성중공업은 KCS, 대우조선해양은 솔리더스(SOLIDUS)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내놓았으며, 단열 성능 개선, 시공성 향상, 구조 안정성 강화 등 KC-1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들 기술은 이미 글로벌 선급기관들로부터 인증을 획득한 상태다.

그러나 상용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선주들은 여전히 GTT 기술을 선호하고 있어, 국산 기술은 사실상 첫 적용 단계에서 좌초되고 있다. 과거 KC-1을 적용한 LNG선 2척이 시운전 후 화물창 내부 결함으로 상업 운항이 중단된 전례가 있어 선주 사이에서 ‘한국산 기술은 위험하다’는 낙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실정이다.

조선업계는 개발 시작 이후 20년 넘게 이어온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정부의 선제적 역할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민간 선사들이 실적과 신뢰도를 중시해 쉽게 채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초 실증 수요를 창출하고 초기 상용화를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해양수산부가 추진한 LNG 연료추진 실증선 및 벙커링선 파일럿 프로젝트에서도 정부의 보조금과 금융 지원이 시장 활성화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친환경 해운 전환이라는 정책 기조 아래, 파일럿 프로젝트에 대해 건조 비용의 10% 보조금, 보증료 및 금리 우대 등 금융 지원책을 병행하며 초기 수요 기반을 마련했다.

업계는 이 같은 선례에 비춰 ‘GTT 기술 의존 탈피’를 정책 목표로 설정할 경우 국산 화물창 기술의 실증선 발주도 국익형 기술 사업이자 공공조달의 명분이 충분한 사업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정부의 예산 투입, 조달 절차 적용 등 실질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GTT의 화물창 기술은 수십 년간 축적된 실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며 “선사들이 선박 발주 시 화물창 기술을 사전 지정하기 때문에, 국산 기술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은 있으나 실적이 없어 쓰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정부가 실증 운항을 전제로 한 선박 발주를 지원하는 등 ‘첫 고객’ 모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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