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서율 전 국민의힘 부대변인.
[미디어펜=편집국]고장난 변기 수리, 과도한 보좌진 교체, 명품 구입, 호캉스 픽업, 욕 문자, 고함치기에 제자 논문 표절, 중복 게재, 자녀 불법 조기유학…. 아무 생각없이 봐도, 지극히 문제가 있는 단어들이다. 

놀랍게도 이 단어들은 최근 정부 부처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쏟아져 나와, 며칠간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과연 대통령실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지 굉장히 의심스럽다. 이렇게 되니 현 정부가 국민눈높이에 맞춘 공정한 검증을 내세우면서 야심 차게 쏘아 올린 ‘국민추천제’도 결국 ‘인사책임회피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 검증이 필요한 이유는, 각 부처에서 추진하려는 정책의 진정성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장을 위해 활동한 정책 전문가로 본인을 소개해 온 강선우 의원이, 정작 직업 관계상 을(乙)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보좌진들을 괴롭혀 왔다니. 그리고 그런 인물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강선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황당했던 것 중 하나는 비데가 고장 나 물난리가 나서 지역사무소에 있는 지역보좌진에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했다는 점이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 가장 먼저 비데 회사 고객센터나 관리 담당자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사무소의 지역보좌진에게 연락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좌진을 사적인 일에 동원해도 된다는 인식이 몸에 배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강 후보자 외에도 국회의원들의 많은 갑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국회 보좌진들이 모인 익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분노 어린 목소리가 우렁찼다. 개인적으로 보좌진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어 더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국회의원 보좌진 직업 특성상 인내할 일이 많을 텐데, 그런 보좌진의 인내심 발휘를 ‘갑질’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왔다는 사실. 그간 얼마나 많은 일들을 꾹꾹 참고 견뎌왔을지 생각하니 분노가 일었다.

   
▲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 후보자 사퇴를 요구하는 피켓을 여당의 항의가 이어지자 떼어내고 있다. 2025.7.14./사진=연합뉴스

결국 7월 23일, 강선우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여론의 공분을 산 이슈라 당장은 조심하겠지만 이후의 후폭풍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났다고 해서 관심을 거둘 것이 아니라, 자진 사퇴의 본질이 ‘갑질’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강선우 후보자가 물러난 뒤에 ‘강선우 효과’로 의원들이 보좌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명한 것은 후보자 한 명의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좌진의 인내와 침묵을 ‘갑질의 기회’로 삼았던 일은 없었는지 국회의원 스스로 돌아보고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국민추천제로 발탁된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또 어땠는가.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그런데 교육부 수장이 될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니, 최소한의 검증조차 이뤄지지 못한 ‘인사책임회피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듯했다.

특히 제자 논문 가로채기와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은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는데,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조차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후보자의 제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학계에 있는 동료들이 교수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 신고하거나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까운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신고하고 싶다고 다 신고할 수 있었으면, 대한민국 대학원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게 되면 학위도 못 따고, 아까운 시간과 노력만 허비한 것이 되고, 인생이 힘들어진다. 회사를 그만두면 경력이라도 남겠지만, 대학원은 다르다. 그래서 결국 수많은 대학원생들은 나름의 생존을 위해 인내와 침묵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누군가의 인내와 침묵을 되레 이용해 사회 곳곳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갑질’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됐다. 중요한 것은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와 자진 사퇴 그 자체가 아니다. ‘갑질’이 여론의 공분을 사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금, 분노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갑질을 없애기 위해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아마도 그 시작은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송서율/국민의힘 전 부대변인
2025.1.-현재 국민의힘 경제활력민생특별위원회 위원, 2023.3-현재 정책연구단체 Team.Fe 대표, 2024.7.-9. 국민의힘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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