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 물가 불안과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 속에서 국내 철강사들의 조선용 후판 가격 인상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과 실적 악화에 의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반면 조선사들은 고정가 수주 구조상 수익 감소를 우려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
 |
|
▲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경. 사진=현대제철 |
◆철강사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후판 단가 인상 불가피”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 24일 오후에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서 "원료·에너지 가격을 반영해 인상 협상을 추진하고 조선용 후판도 적자 누적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후판 가격 인상을 시사했다.
실제 철강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은 지난 22일 북중국 현물 가격 기준 톤당 104.85달러(약 14만4500 원)를 기록했다. 지난달 25일 92.75달러(약 12만7800원)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이래 약 한 달 새 13%가량 상승한 수치다.
이는 최근 중국 정부의 철강 생산 감축과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재차 높아지면서 철광석 시세가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철광석은 후판 생산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철광석 가격 급등은 후판 제조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특히 이러한 원재료 가격 상승분은 철강사들의 후판 단가 인상 명분으로 크게 작용한다. 앞서 진행해온 후판 가격 협상에서도 철강사들은 후판 단가 협상 과정에서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며 가격 인상 명분을 강화해왔다.
중국의 철강 생산 감산 정책 역시 후판 가격 인상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탄소 중립 2060’ 목표 달성과 환경 규제 강화를 위해 2025년까지 철강 생산량을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실제 지난 1일 중국에서 개최된 중앙재정경제위원회 회의에서 중국 당국은 "무질서한 가격 경쟁을 억제하고 기업들이 제품 품질을 향상하고, 낡은 생산 능력을 질서 있게 퇴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앙재정경제위원회는 기업 간의 반복적이고 비생산적인 경쟁을 방지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언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중국의 생산 감축이 글로벌 후판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감산 정책에 따른 저가 제품 공급 제한 상황에서 국내 조선소들이 2~3년치 수주물량을 쌓아 놓은 만큼, 안정적인 후판 수급을 위해 국내 철강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인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한화투자증권은 18일 발간된 ‘Steel Alive’ 산업분석 리포트에서 중국 정부의 철강 감산 조치와 자발적 생산 축소로 인해 공급이 줄고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중국발 공급 과잉이 해소되고 하반기부터 업황 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7월 말 예정된 중앙정치국회의에서도 철강 구조조정 혹은 경기 부양 언급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만약 그러할 경우 올해 가을부터 구체적인 철강 구조조정 계획도 기대해 볼만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
 |
|
▲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진=한화오션 |
◆조선사 “고정가 수주 구조 속 원가 인상 부담…수익성 훼손 우려”
반면 조선업계는 철강사의 가격 인상 조짐에 대해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고정된 선박 수주 단가와 상승한 자재비 간 괴리로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원가 상승이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조선사들이 이미 2~3년 단위의 고정가 장기계약으로 선박을 수주해뒀다는 점이다. 통상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원가의 약 10~20%를 차지하며 가격 상승시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때 자재비 상승분을 선가에 그대로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판 가격 인상은 그대로 이익 감소로 연결된다.
이에 따라 조선사들은 철강업계가 요구하는 일괄 인상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일부 조정하거나 분기별 연동 방식의 유연한 계약을 제안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수주는 장기계약 형태로 이뤄지기에 철강업계의 ‘가격 인상’은 조선사 입장에선 곧 ‘수익성 감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업계 안팎에선 이번 후판 단가 협상도 당장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철강사와 조선사 간 입장차가 첨예한 상황에서 상반기 협상이 장기화된 데 이어 이번 하반기 협상도 상당 기간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후판 단가 협상은 양측의 의견 차로 해를 넘기며 장기화된 바 있다. 조선업계는 당시 중국산 저가 후판 수입 확대와 철광석 가격 하락을 근거로 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철강사들은 제조원가 부담 등을 이유로 인상 또는 가격 동결을 주장하며 맞섰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은 조선사 선박 건조 원가의 20%, 철강사 전체 매출의 약 15%를 차지는 만큼 두 업계의 한 해 수익성을 좌우한다”며 “이 때문에 후판 단가 협상은 양측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으로, 쉽게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