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해운 매각 지연, 중단 아닌 조율
선대 확장도 타이밍 전략으로 불확실성 대응
장기 성장 위해 ‘무리한 확장’보다 신중 기조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국내 최대 컨테이너선사 HMM이 선대 확충과 기업 인수 전략을 ‘신중히 늦추는’ 방식으로 추진 중이다. 표면상으론 일정 조정과 사업 검토의 연속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타이밍 전략에 가까운 행보다.

   
▲ 부산신항에 정박 중인 HMM 플래티넘호. 사진=HMM

◆신조 발주 잠잠하지만 자금력 문제 없어… HMM, 선대 확충 ‘속도 조절’ 

30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지난해 하반기 ‘2030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뚜렷한 신조선 발주를 하지 않고 있다. 당시 컨테이너선 120척, 벌크선 55척 확보 등 공격적인 목표를 내걸었지만 실제 행보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반면 글로벌 주요 컨테이너선사들은 대규모 신조 발주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선복량 대비 오더북 비중은 MSC 31%, 머스크 15%, CMA CGM 37%, COSCO 33%로 높은 반면, HMM은 6% 수준에 그친다.

자금력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다. HMM은 최근 몇 년간 해운 호황으로 재무적 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HMM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 3.1조 원, 유동 금융자산 12.6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HMM이 2030년까지의 장기 목표로 내세운 컨테이너선 선복량 155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달성하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규모의 신조 발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HMM의 선복량은 94만TEU다.

하지만 반대 시각도 존재한다. 글로벌 해운 시황의 불확실성, 고신조가 부담, 낮은 중국 조선소 의존도 등의 이유로 HMM이 신중히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속 하락세다. 지난 18일 기준 SCFI는 1646.90으로 전주 대비 4.98%, 3개월 전과 비교해도 5.27%(86.39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운임과 달리 선박 가격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신조선가지수는 187.11포인트로 전월보다 0.42포인트 상승했으며, 2021년 저점(127포인트) 이후 줄곧 고점을 유지하고 있다.

통상 운임 지수 하락은 선사들의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투자 여력 축소로 연결된다. 특히 선박 건조 비용이 고점을 유지하는 현 상황에선 HMM이 운임 하락기 동안 신조 발주를 진행할 경우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HMM이 중국 조선소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신조 발주를 공격적으로 진행 중인 글로벌 선사들은 대부분 물량을 중국 조선소에 집중 배정하고 있다. 메트로 등 외신에 따르면 MSC는 오더북의 92%, CMA CGM도 과반 이상을 중국 조선소에 맡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가능성과 맞물려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 해운 및 조선 산업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관세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HMM보다 먼저 신조선을 발주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우위를 점했다고 보기 어렵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은 보통 여러 척을 동시에 발주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HMM의 신조선 발주 지연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시황 반등 여부를 지켜보며 전략을 재조정하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HMM이 운영 중인 컨테이너선. 사진=HMM


◆SK해운 일부 사업부 매각, 결정은 안 했지만 멈춘 것도 아냐

컨테이너선과 달리 HMM은 벌크선 시장에서는 중고선과 중소형 신조선 중심의 선별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HMM의 매출 추이가 컨테이너선 운송실적과 맞물려 움직이는 구조를 쇄신하기 위함이다. 컨테이너선은 단기 운임 계약이 주를 이루는 만큼 시황에 따라 수익성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벌크선은 5년~10년 단위의 장기운송계약을 중심으로 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기여한다.

2022년 HMM이 18조5828억원이었던 매출이 이듬해 8조원 수준으로 급감한 적이 있는데, 당시 컨테이너선 매출이 17조3050억원에서 6조9646억원으로 줄어든 반면 벌크 부문은 2022년 1조948억원에서 2023년 1조2431억원으로 수직 성장한 것이 이 이유다.

이에 따라 HMM은 중장기적으로 컨테이너선 비중을 2030년까지 78%, 벌크선은 22%로 조정할 계획이다. 현재는 컨테이너선이 약 85~90%, 벌크선은 10~15% 수준이다. 이 계획을 위해 약 5조6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으며, 일부는 인수합병(M&A) 재원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들어 총 10척의 중고 벌크선을 매입하며 선대를 확장했으며 에이치라인해운이 최근 매물로 내놓은 벌크선 4척에 대한 매각 입찰 공고에도 HMM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대표적인 M&A 전략으로 주목받았던 SK해운 일부 사업부 인수전은 최근 조용히 속도를 늦춘 모습이다. HMM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진전이 없어 매각 중단설까지 제기됐으나,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HMM 측은 “지난 1월15일 SK해운 일부 자산 인수 등과 관련하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공시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이러한 매각 지연이 HMM의 몸값 상승에 대한 부담을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HMM 주가는 이재명 대통령의 본사 부산 이전 공약 등으로 지난 4일 이후 10% 이상 상승했으며,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16조 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SK해운 사업부가 더해질 경우, HMM의 기업가치는 2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인수 자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채권단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관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 현재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HMM 지분 71.69%(7억3479만156주)를 보유 중이며, 영구채 주식 전환과 전환사채(CB) 전환 등을 통해 지분율을 높여왔다. 대규모 인수로 자산이 확대될 경우 채권단의 매각 부담도 커지는 셈이다.

부산 본사 이전 이슈 역시 SK해운 인수의 우선순위가 밀려난 이유 중 하나다.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HMM 본사 부산 이전을 공약하면서, 업계에서는 실제 이전이 추진될 경우 직원들의 이주에 따른 생활 안정, 가족·주거 문제 등 복합적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노사 간 협의나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시의회는 지난 29일 해수부와 HMM의 동시 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적극적인 유치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업계에서는 HMM의 내부 갈등 해소가 시급한 우선 해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SK해운의 일부 사업부 매각이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단된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가능성은 열려 있다”며 “불확실성 속에서 무리한 전략을 추진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맞춘 신중한 타이밍 조율이 HMM의 장기적인 안정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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