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1500억 달러 규모 공동펀드 투자
정부차원의 공동협력 프로그램 열린 셈
상선·방산·친환경 선박 등 미래 먹거리 확보 가능
[미디어펜=이용현 기자]한미 양국이 15% 수준의 상호관세 도입에 최종 합의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내 직접 진출 및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전망이다. 이번 협상에 따라 한국 정부는 총 3500억 달러(약 47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했으며, 이 중 1500억 달러(약 209조 원)는 조선업 중심의 공동펀드로 활용된다.

   
▲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통상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윤철 부총리,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사진=기획재정부


◆한·미 관계, ‘관세 갈등’서 ‘전략 동맹’으로

31일 산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무역협상 타결을 공식화하며 “한미 간 관세율을 상호 15%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25%에서 완화된 수치지만 해당 관세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 완성차업계의 경우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해왔던 상황이 종결됐으며, 철강사들은 이마저도 적용받지 못하면서 관세 50%가 유지됐다.

다만 조선업에 대해서는 별도 공동펀드 조성, 기술이전, 현지화 전략 등이 병행되며 실질적인 교두보 확보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의 협상 타결을 위해 정부가 조선업 발전을 키카드로 내놓은 만큼 조선 사업 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이유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미 관세 합의 후 “오늘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패키지, 소위 마스가(MASGA) 프로젝트”라며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 부총리는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 MRO 등을 포괄해 조선업 전반에 대해 우리 기업 수요에 기반해 사실상 우리 사업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국내 조선사들이 미국 내 진출에 대한 정책적 명분과 시장 기반을 동시에 제공했다는 평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관세 부담은 일부 남지만, 정부 차원의 펀드와 R&D 공동협력 프로그램이 병행되면서 실질적 진출 기회가 열린 셈”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군함, 해양설비, 친환경 선박 등 다양한 수요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MASGA 프로젝트, 현지 투자·기술 이전이 열쇠

이번 합의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미국 측이 제시한 조건이다. 미국은 한국 조선업계에 △미국 내 투자 및 생산 확대 △친환경 선박 R&D 협력 △핵심 기술 일정 수준 이전 △현지 인력 양성 지원 등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처럼 구체적인 조건을 내건 배경에는 조선업을 단순 제조업이 아닌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는 미국 정부의 인식 변화가 있다. 미국은 자국 조선업 기반이 붕괴된 이후 군함과 상선 모두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 장기화되자, 한국과의 기술 협력 및 공동 생산을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 전략 산업으로서의 조선업을 양국이 공동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이번 MASGA 프로젝트의 기초는 이미 한국 조선사들이 수년 전부터 구축해 온 미국 내 진출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한화오션, HD현대 등은 정부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현지 파트너 발굴 및 기술 공동개발에 착수해온 바 있어, MASGA는 이들의 선제적 투자를 제도화한 셈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거점으로 미국 내 액화천연가스(LNG)선 조립기지를 구축 중이다. 특히 최근 계열사인 한화해운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첫 발주한 LNG선은 미국 조선소에 46년 만에 발주된 첫 상선으로 기록되며 현지에서도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향후에는 수소·암모니아 연료 기반의 차세대 선박 조립라인도 이 조선소 내에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HD현대는 미국 해양방산 1위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HII)와의 협약을 통해 미국 해군 및 연방 정부 발주 사업 진입을 모색 중이다. 또한 오프쇼어 선박 전문회사 에디슨 슈에스트와는 미국 규제 적합형 컨테이너선 건조를 추진 중이며, 실제로 미국 현지에 공정 전문가를 파견해 선행 설계 및 기술 이전 작업에 착수했다. 내년까지 미국 현지에서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을 본격 건조하는 것이 목표다.

삼성중공업 역시 미국 내 진출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 해군 보조선 수주와 함께 디지털 트윈 기반의 스마트십 솔루션 기술 수출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조선사들이 MASGA 프로젝트에 발맞춰 미국 내 투자와 기술 협력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업이 단순 수출산업을 넘어 양국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 사진=한화오션

◆K-조선, ‘Maid in USA by Korea’로 먹거리도 확보

아울러 업계에서는 이번 한미 합의로 국내 조선업계가 수년간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았다는 기대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그간 조선업은 △중국 조선소의 저가 공세 △고부가 LNG선 중심의 수요 감소 △2025년 상반기 수주 급감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글로벌 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1~6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938만 CGT로, 전년 동기(4,258만 CGT) 대비 54.5%나 줄기도 했다. 특히 국내 조선사들의 주력 품목인 LNG선 수주는 82.9% 감소한 105만 CGT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국 조선사들이 미국 내 조선산업 재건에 공식 참여하게 되면 방산 및 민수 분야 모두에서 장기적 수요 확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상선의 경우 현재 미국의 상업용 선박 건조 비중은 전 세계의 0.13%에 불과하며, 보유 상선도 200척이 채 되지 않아 중국(7000척 이상)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한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방산분야의 경우에도 한국 조선사들은 미국과의 MRO(유지·보수·정비) 계약을 지속적으로 체결해왔으며, 최근에는 미국 해군 함정의 정비 및 개조 사업으로까지 참여 범위를 확대하는 등 높은 신뢰도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공급망 한계 속에서 생산과 기술 이전이 가능한 한국 조선사들과의 협력은 미국 입장에서도 전략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과 민수 분야 뿐 아니라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한국은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국제해사기구(IMO)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과 친환경 전환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세 자체는 분명 부담이지만 공동펀드를 통한 현지화가 본격화되면 미국 내 입지 확대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관세 회피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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