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2월, 고인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 정식 발족
작년 제44주기 추모식, 국제학술회의 ‘김홍일의 생애와 업적’ 개최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사단법인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가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 ‘오성 장군’ 김홍일을 기리는 제45주기 추모식을 진행했다고 8일 밝혔다.

   
▲ 김홍일 장군 제45주기 추모식 전경./사진=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 제공


이날 추모식에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권오성 대한민국 육군협회장, 소형기 육군사관학교장, 권영우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등 정부와 군 관련 인사를 비롯해 서울권 13개 대학 학군사관후보생(ROTC) 대표, 독립유관단체, 일반시민 등 약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오성 장군’ 김홍일은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로 망명 후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북벌전쟁,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고, 특히 1931년 상하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 근무 시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도와 한인애국단 이봉창 의사의 동경 일왕 폭탄 투척 의거(1932년1월8일)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1932년4월29일) 등에 폭탄을 제공하며 침체기를 겪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데 기여했다.

1945년에는 김구 주석 권유로 한국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에 부임해 한·미 연합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창군 최초 장군으로 임관 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전쟁에서는 한강방어선 전투에서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고,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 국군의 반격작전을 개시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 예편 후, 주중화민국 대사, 외무부장관, 재향군인회장,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은 1980년 8월8일 향년 83세 일기로 서거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군에서의 2성 장군과 해방 이후 한국군의 3성 장군 경력을 합쳐 ‘오성 장군’으로 불리며,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발휘한 구국의 투혼은 원수(元帥)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1951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수여했으며, 1998년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2015년에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도 선정했다.

이번 추모식에서는 AI로 구현한 김홍일 장군이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며, 식 중에는 김홍일 장군이 육군사관학교장 재직 시절 생도 2기로 입학했으며, 6.25전쟁 참전 유공자이기도 한 장기호 육이오참전육사생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의 회고사로 의미를 더했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가 추모식을 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 2023년 유족을 만난 김호연 회장은 김홍일 장군 서거 이후 40여년이 지나도록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지 않아 장군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사재를 출연해 기념사업회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모든 제반 비용을 후원했다.

김 회장의 지원으로 지난 2024년 2월 기념사업회 설립 이후 제44주기 추모식과 국제학술회의를 성료했으며, 김 회장의 초청으로 미국에 거주 중인 김홍일 장군 유족까지 참석해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됐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김홍일 장군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