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208조 원 규모의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미국 내 존스법과 번스 톨리프슨법의 완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잠재적 리스크도 함께 고려해야한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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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이 공개한 마스가 모자./사진=연합뉴스 |
◆MRO 사업 위탁, 초기 진입 이점 불구 수익성 낮아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미 조선 협력의 4가지 경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미국 선박의 정비·수리·운영(MRO) 사업을 위탁받는 방식이다. 지난 2월 GAO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조선 인프라 및 인력 역량 부족을 함정 수리의 주요 장애물로 지적했으며, 이로 인해 긴급 수리와 같은 계획되지 않은 작업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 MRO의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 조선사들은 이러한 우려에 맞춰 MRO사업을 확대해왔다. 지난해 8월부터 한화오션은 미 해군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호’, 급유함 ‘유콘호’, 보급함 ‘찰스 드류호’ 정비 사업을 연이어 수주해왔으며, 지난 6일에는 HD현대중공업도 미 해군 7함대 소속 군수지원함 ‘USNS 앨런 셰퍼드’의 정기 MRO 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시장조사전문업체인 모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은 군함 MRO 비용 만으로 연간 20조 원 정도를 쓸 예정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미군의 MRO 협력사업이 국내 조선사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MRO사업의 경우 건조 사업 대비 고부가가치 창출이 제한적이라는 단점도 공존한다. MRO 사업이 초기단계이기에 수주 구조가 단순한 군수지원함과 급유함, 보급함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통상 비전투함 MRO 사업은 매출이 수백억 원대 수준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주력해온 LNG 운반선이 1척당 약 3500억 원에 이르는 것에 비교하면 수익성 자체는 한참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즉 수주 물량이 없어 도크가 비워 있는 상황에서는 MRO 물량이 득이지만, 수주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상황에서 MRO 물량이 많아지면 오히려 수익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결국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비전투함보다 전투함 MRO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투함의 경우 비전투함에 비해 복잡한 시스템 탑재, 기밀유지와 보안 기준 강화,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만큼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반스-톨레프슨법으로 인해 미국이 전투함의 건조와 MRO를 외국 조선사에 맡긴 사례가 없다. 하지만 지난 19일 미 상원의원과 조선3사 유관부서가 진행한 간담회에서 외교부 측은 조선협력의 성공을 위해 미국 내 규제 완화 등 입법적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하는 등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를 요청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 비전투함 MRO의 경우 조선사들의 수익성 향상에 큰 영향은 없으나, 전투함을 수주할 경우 단기간 내 유의미한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며 “번스 톨리프슨 법이 완화만 된다면 국내 조선사들의 전투함 MRO 시장 진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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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사진=한화오션 |
◆미 조선소 인수, 중장기 성장에는 유리… 현지 이해관계 조율 병행해야
두 번째는 동맹국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한화오션이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고 설비를 투자하며 기술과 인력을 이전한 사례와 동일하다. 이 방법은 미국 법적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실례로 지난달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 후 고부가 사업으로 꼽히는 LNG운반선을 첫 수주하면서 한미 조선협력에 박차를 가했으며, 현재 앨라배마·캘리포니아주에 조선소가 있는 호주 해양방산기업 오스탈 지분(9.9%)도 확보하는 등 추가적인 조선사 인수도 준비 중이라는 평가다.
또한 정부가 미국에 조선업 펀드로 제시한 1500억 달러(약 208조 원)는 지난 1일 종가 기준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주요 조선기업 3사 시가총액인 약 94조 원의 2배가 넘는 수치로, 국내 조선사의 미국 조선소 인수 및 시설·인프라 투자비에 사용될 여력 역시 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조선소 인수 방식이 경쟁력 확보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현지 노조·지역사회와의 이해관계 조율이 필요하다는 단점 역시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비용 역시 높게 책정될 것으로 보여 원가 경쟁력이 낮아 수주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실제 2006년 한진중공업은 약 2조 원을 들여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세웠지만 전체 2만5000명의 노동자 중 정규직 300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필리핀 현지 하청업체 소속이었기에, 숙련된 기술 인력 부족으로 선박 품질에 문제가 발생했다. 또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후 수빅조선소의 경영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해 부실기업으로 평가하며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된 바 있다.
그 결과 수빅 조선소는 2019년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뒤 서버러스에 인수되며 실패사례로 남았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한화오션 사례처럼 현지 인수 후 수주 실적을 확보하고, 추가 지분 인수를 통해 조선사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과거 수빅 조선소 실패 사례에서 보듯 현지 노동환경과 정치적 요인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초기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CSIS 보고서는 “조선업 노동자 채용과 유지가 어려운 이유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복리후생 때문인데 조선 노동자 임금을 높이면 함정 건조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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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환석 방위사업청 차장과 제이슨 포터 미 해군성 연구개발획득차관보가 미 워싱턴 D.C. 미 해군성에서 면담 후 기념촬영 중이다./사진=방위사업청 |
◆모듈 공동생산, 규제 완화·표준화가 관건
세 번째는 군함을 블록 모듈(Modular) 방식으로 분산 생산한 뒤, 미국 현지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공동 설계·건조하는 방안이다. 이는 한국 조선업계가 블록 단위로 군함을 건조하고, 미국 현지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선박 건조는 선체를 한 번에 완성하는 방식으로, 한 구간이 완성돼야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있으나, 모듈식 방식은 선박을 여러 블록(모듈) 단위로 나눠 동시에 여러 블록을 병렬로 제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정 대기 시간이 줄어들고, 전체 건조 일정이 단축될 수 있다.
실제 방위사업청은 지난 6~7일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국 조선업계가 미 해군 전력 유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함정 건조, 블록모듈 생산·납품 후 미국 현지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이를 위해 양측은 '반스-톨레프슨법' 개정 등 규제 완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세부 논의를 위한 워킹그룹을 신설하기로 했다.
다만 모듈 설계와 생산 과정에서 기술적 차이에 의한 표준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은 해결과제로 남는다. 실제 2020년 미국은 중국 해군의 건함 물량 공세에 맞서 미국 내 조선소를 보유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에 새 함정을 주문했으나 최근에야 건조에 착수했다. 기존 이탈리아의 FREMM급 호위함을 미국 설계에 맞는 컨스텔레이션급으로 전환할 때, 공통 설계 목표가 당초 85%에서 15%로 급감하면서다. 이는 미 해군의 잦은 설계 변경 요구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모듈 이동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문제다. 모듈식 생산은 고생산성 조선소의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에서 모듈을 생산하고 최종 조립만 미국에서 수행하는 방식을 채택할 경우, 장거리 모듈 이동이 필요해 추가적인 자본 투자를 통한 운송 장비 확보가 불가피하다.
CSIS는 보고서에서 "큰 모듈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일부 미국 생산업체는 특히 장거리 이동을 고려했을 때, 현장 외 모듈 생산을 활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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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차기구축함 조감도(KDDX)./사진=HD현대중공업 |
◆직접 구매 방식, 제약 있지만 조선사엔 기회
네 번째 방안으로는 미국 해군이 동맹국 조선소에서 함정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CSIS는 이 방법이 가장 비용효율적이고 신속한 해결책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 조선 산업의 보호주의와 군사 보안 규제로 인해 실현 가능성이 가장 적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군함 발주를 자국 조선소에 집중시키며, 군사 설계 표준도 매우 복잡하다는 이유다.
보고서는 “외국 함정에 기존 설계를 재사용해 빠르게 함정을 확보할 수 있지만, 미국 시스템과의 완벽한 상호 운용성을 포함한 미 해군의 특정 작전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외 설계를 미국 기준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기존보다 높은 수준의 요구사항을 적용하는 미국의 ‘골드플레이트’ 방식이 함정 구매 시 장벽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CSIS는 "미국은 조선산업 문제 해결을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에 의존하는 것과 자국 역량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한미 조선 협력 확대를 위한 법적 장벽 완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만큼 실현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다. 존 커티스 미국 상원 의원은 최근 미국의 준비태세를 위해 함정 355척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291척만 운영되고 있다며, 미 해군 함정 건조를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KDX-III 배치 1 이지스 구축함은 미 해군 이지스 체계와 호환성을 갖춘 설계로 국내에서 건조된다. 이는 미 해군 DDG-51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을 기반으로 개발된 함정으로, 미국 함정 체계와 공통 설계를 사용하기에 앞선 FREMM 사례와 달리 미국 설계 도입 시 호환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한국 함정을 미국식 설계로 운영하는 방안은 문제가 없다”며 “존스법, 번스 톨리프슨법 등 규제만 완화된다면 함정 구매 방식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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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왼쪽)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
◆MASGA 프로젝트 걸림돌, 노란봉투법 리스크 해소해야
MASGA에 따른 본격적인 협력에는 국내 법적 리스크 해소 문제도 존재한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의 영향이다. 해당 법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원청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내 조선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1차 협력사만 각각 1430개와 2420개에 달하기에 파업 영향에 쉽게 노출되며, 이 때문에 MASGA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해외 협력 상황에서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미국 현지로 파견되더라도 국내 노조의 쟁의행위 가능성 때문에 기업 활동이 제한될 수 있는 상황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해외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국내 조선업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가능해지고, MASGA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측에서도 한국의 노란봉투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9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은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만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날 제임스 김 암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비즈니스 허브로서 한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노동 환경이 필수적"이라며 "현재의 형태로 제정된다면 이 법안은 한국을 고려한 미국 기업들의 향후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에서는 MASGA 프로젝트가 한국 조선업계에 미국 시장 확대라는 기회와 동시에 법적·제도적 리스크라는 도전을 함께 안겨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MRO 사업을 통한 안정적 매출 확보가 가능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조선소 인수나 공동생산 방식이 유효한 전략으로 꼽힌다"면서 "다만 ‘노란봉투법’과 같은 국내 노동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전략적 기회가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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