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혁명” 말하며 30분 지각 트럼프...이 대통령 만나선 “위대한 지도자”
이 대통령 ‘피스 메이커’ 칭찬 이어 선제적 국방비 증액과 ‘미래형 동맹’ 응수
위성락 "원자력 협력 문제 양 정상 간 의미 있는 논의...추가 협의 이어질 것"
강훈식 "장기적으로 핫라인 구축 필요...와일스 비서실장과 2주전 부터 접촉"
김용범 "한미 간 체결된 MOU 상당히 실무적이고 전문적...변호사 통해 협상"
[미국 워싱턴=미디어펜 김소정 기자]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거친 SNS 발언으로 파국이 우려됐다가 화기애애하게 회담이 마무리되는 '롤러코스터' 상황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낮 백악관 오벌오피스 정상회담 시작 전부터 '숙청', '혁명' 등 거친 단어를 꺼내 들며 회담장 분위기를 한때 얼어붙게 했다. 그러나 막상 회담에 들어가자 이재명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 및 약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양측 참모진들과 함께한 오찬을 겸한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전사다”라며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오찬 회담을 마치면서도 아쉬워하며 “대단한 진전”, “대단한 사람들”, “대단한 협상이었다”면서 이 대통령에 “당신은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는 회담을 불과 2시간여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려 긴장감이 돌았던 상황에서 대 반전을 이룬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폭탄 발언’을 들은 이 대통령이 ‘칭찬 세례’로 마무리될 만큼 회담 분위기를 이끈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북한 이슈를 앞세워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만 풀 수 있는 문제임을 강조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첫 발언을 “피스 메이커”라는 띄어주기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를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에서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사항에  맞춰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고, 그 과정에 대한민국도 함께하기를 기대한다“며 ”다우존스 지수에서도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다. 제가 보니까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더라. 한미동맹을 군사 분야뿐 아니라 경제, 과학기술 분야까지 확장해 미래형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간 비공개 회담에서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가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미국 언론 기자들에게 “최근 며칠간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SNS에 쓴 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예정된 회담 시작 시각을 30분이나 넘기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려야 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함께 웃고 있다. 2025.8.26./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가진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정책연설 이후 존 햄리 소장과의 대담에서 미소를 지으며 “참모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수난을 겪었던 것과 비슷하게 흘러갈까봐 걱정했지만 저는 이미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을 읽었기 때문이다. (책에) 상대가 감내하기 어려운 조건을 던지지만, 최종적으로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본인이 써놓았다”고 설명했다.

양 정상의 회담은 소인수 회담 및 약식 언론 질의응답이 50여분, 이어 오찬 회담이 80여분간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총 2시간 30분간 진행됐다.

오찬 말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백악관 기념품 샵으로 안내했고, 이 대통령의 참모진 모두에게 선물을 고르게 한 뒤 선물에 일일이 서명을 해주는 배려를 보였다.

이날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맞춤형 칭찬’으로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을 ‘칭찬 세례’로 응수한 것 외에도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 주장에 선제적인 ‘국방비 증액’ 제시로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인수 회담 공개발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우리가 큰 기지(fort)를 가진 (한국) 땅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에서 "안보 동맹과 경제 동맹에 더해, 저는 트럼프 대통령과 '국익 중심의 실용 동맹'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한다"며 "우선 국방비를 증액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면서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을 이끌어냈다. 북핵 문제에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주장 대신 원전 협력이라는 경제와 관련된 미래형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늦게 현지에서 열린 대통령실 3실장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한미 경제·통상 분야 안정화, 우리 국익에 맞는 한미동맹의 현대화, 새로운 협력 분야 개척이라는 세 가지 모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회담이었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세부 내용에 대한 협의 과정이 좀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정상 차원에서 투자, 구매, 제조 협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며 “동맹의 현대화에서도 일정한 진전이 있었고, 동맹의 발전 방향 및 국방 역량 강화에서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영접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2025.8.26./사진=연합뉴스

또 “새로운 협력 분야 개척에서도 미국과 조선 협력을 크게 늘려간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대통령이 내일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과 함께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위 실장은 특히 “원자력 협력 문제에 대해 정상 간의 의미 있는 논의가 있었고, 앞으로 추가 협의가 이어질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도 양 정상의 의지가 확인됐다. (남북) 대화 재개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앞으로도 긴밀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밖에 한미 양국 정상의 비서실장간 핫라인 구축도 예상 못한 서프라이즈 결실이다. 브리핑에 참여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저한테 궁금한 것은 아마 왜 미국에 왔고, 누구를 만났나일 것”이라며 “지난 통상 협상 이후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장기적으로 종합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핫라인 구축이 필요하다고 저희는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강 실장은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는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이 적합하다고 판단했으며, 2주 전부터 추진하게 됐다. 다만 정상회담을 위해 여러 주체들이 협상을 진행 중이었으므로 집중할 수 있도록 양국의 비서실장은 일정을 공개하지 않고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와일스 비서실장과 면담을 준비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올린 글 때문에 당황했으나 면담을 시작하면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확한 사실관계를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지 82일만에 열린 늦장 회담인데다 앞서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한차례 예정된 만남이 불발되는 우여곡절도 겼었다. 그런 만큼 회담 결과를 볼 때 일단 첫 만남은 무난하게 치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관세 합의의 후속 협상과 동맹 현대화 협상은 이어질 것이므로 ‘진짜 청구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강 비서실장도 “과거처럼 하나가 끝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협상의 과정 속에 있다. 새로운 문제, 어떤 이슈가 또 제기될지 모르기 때문에 협상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미 간 체결된 양해각서(MOU)가 상당히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변호사도 채용해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