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조건으로 내건 시정조치가 항공업계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부른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공급 좌석 90% 이상 유지 조건과 운임 인상 제한 규제가 애초 의도와 달리 LCC의 수익 악화와 함께 일부 노선의 독점화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 심화와 항공권 요금 상승을 막기 위해 비자유화 노선 11개, 자유화 노선 15개에 대해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계열은 기준점인 2019년 공급석의 90%를 유지하고 항공권 요금 인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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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단부터)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항공기./사진=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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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 없는 증편, LCC 철수로 이어져
문제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노선까지 증편을 강제한다는 점이다. 실례로 부산~다낭 노선과 괌 노선의 경우 2019년 기준 90% 수준의 공급석을 유지하기 위해 올해까지 상당 수준의 증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부산~다낭 노선은 지난 2019년 기준 공급석이 56만6000여석 수준이었으며 괌 노선은 87만9000여석이었다. 올해는 90%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각각 51만 석과 79만 석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난 1~7월까지 다낭과 괌 노선의 공급은 각각 16만3000석, 29만6000석에 그쳤다.
즉 하반기에만 다낭 노선 35만 석, 괌 노선은 50만 석 가까이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천∼괌 노선의 경우 코로나 이후 현지 수요가 2019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인천~괌 노선은 노선 여객 수가 2019년 1~7월 약 67만 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37만8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공정위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운항을 대폭 늘렸다. 대한항공은 부산~다낭 노선에 A330 기재를 활용해 주 7회 운항으로 재진입 했다.
인천~ 괌 노선 역시 이달부터 인천~괌 노선을 주 7회 증편해 각각 총 21회, 14회를 운항 중이며, 에어서울 역시 오는 10월부터 주 7회 일정으로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이 억지로 늘어나자 기존 해당 노선을 운항하던 일부 LCC들이 노선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괌 노선을 동계 시즌 이후인 내년 3월까지 운항을 잠정 중단했고 티웨이항공도 오는 10월 2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운항을 중단한다.
이에 따라 괌 노선은 13년 만에 다시 대한항공 계열 독점 체제가 됐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의도했던 ‘경쟁 확대’를 위한 조치가 오히려 ‘경쟁 축소’로 뒤집힌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괌 노선이 2배 가까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상황에서 장거리 노선에 특화된 대형항공사와 경쟁하는 것은 LCC의 부담이 크다”며 “결국 적자 감수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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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나항공과 티웨이항공의 바르셀로나 노선 운임. 불과 1960원 차이에 그쳤다./사진=각 사 홈페이지 캡쳐 |
◆ 공정위 시정 조치, 소비자 피해·안전 우려까지 번져
이번 시정 조치의 의도는 항공사 통합에 따른 독과점 체제 발생으로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격 인상 제한 조치를 제외하면 소비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 소비자들의 피해로도 이어졌다. 앞서 괌 노선 특가 항공권을 판매했던 제주항공을 예매했던 승객들은 해당 노선의 공급과잉에 따른 운항 중단으로 인해 숙박·투어 등 연계 비용 손실을 경험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경영 판단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일 수 있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간접 피해로 돌아온 셈이다.
아울러 현장에서는 안전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는 두 차례에 걸쳐 공정위에 규제 완화를 요청하며 “적자 노선 증편 강요가 조종사와 승무원의 과로를 낳아 안전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무리한 증편이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에도 해가 된다는 이유다. 또한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과로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이 티켓값 인상 우려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노선 분배에 따른 LCC의 피해도 발생했다. 앞서 공정위는 아시아나가 보유하던 일부 운수권을 LCC에 넘겨주며 시장 다변화를 꾀했지만, 실제 투입된 티웨이항공은 뚜렷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운임 인상 제한 때문에 아시아나와 가격 차이를 크게 두지 못한 탓이다.
실제 오는 11월 1~8일 기준 아시아나항공과 티웨이항공의 바르셀로나 노선 운임은 각각 120만5100원, 120만3140원으로 불과 1960원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마일리지와 안정성을 고려할 때 굳이 LCC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 티웨이항공의 지난 5월부터 유럽 노선 누적 탑승률은 △자그레브 80% △로마 79% △파리 80% △바르셀로나 84% △프랑크푸르트 75%로 집계됐다. 여름이 대표적인 성수기로 꼽히는 성수기에도 90%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티웨이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럽 장거리 노선을 띄우면서도 적자를 감수하는 상황에 몰렸으며,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이 4353%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 불안정성이 확대됐다.
또한 티웨이가 받은 유럽 노선(바르셀로나 제외)은 ‘운수권’에 해당해, 항공법상 1년 내 취항하지 않거나 매년 최소 주 20회 이상 운항하지 않으면 국토부가 회수할 수 있다. 적자가 이어져 운항 횟수를 주 20회 미만으로 줄일 경우 공정위가 분배한 노선이 다시 회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금 급등과 독과점 심화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가 불가피하며 안전 문제는 경영 관리로 해결할 문제라는 태도다. 하지만 공급과 가격을 동시에 묶어 항공사의 유연한 대응을 차단한 이번 조치는 대형사와 LCC의 비용 구조 차이를 무시한 획일적 규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8월부터 시행된 규제로 연말까지 남은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공급 회복을 요구한 것은 인력 충원과 기단 운영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며 “이는 결국 현장 과부하와 적자 확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위의 목표가 옳더라도 수단은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대형사와 LCC의 구조적 차이를 반영한 차등 적용, 수요에 따른 유연한 감편 허용, 안전 예외 조항 마련 등 정교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의 시정 조치는 소비자를 위한 것으로 의도는 좋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했을 때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라며 “공정위 시정 조치로 오히려 독점으로 회귀하고, 항공사들은 모두 수익성이 떨어져 누구도 웃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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