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제재 강화 속 국내 팹 '메모리 허브' 지위 공고화
[미디어펜=김견희 기자]미·중 반도체 규제가 심화하면서 첨단 메모리 생산 거점이 한국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이 VEU(검증된 최종사용자) 제도를 통해 중국 내 반도체 팹의 첨단 장비 도입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고성능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이 한국에 집중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사진제공=SK하이닉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평택·청주·용인 등 국내 거점에서 글로벌 고객사 수요를 대응하는 선단 공정 체제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로 중국내에서 첨단 메모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핵심 노광장비와 패키징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한국을 중심으로 한 'HBM 삼각 벨트'가 공고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 캠퍼스를 중심으로 HBM4 등 차세대 메모리 양산 체제를 구축 중이다. 289만 ㎡ 규모의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시설이다. 총 6개 공장 부지로 구성돼 지난 2017년 1공장을 시작으로 현재 4공장 일부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실적 부진 등 여러 이유로 착공을 미뤘던 평택 5공장 건설도 재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세대 제품인 HBM4을 포함한 메모리 생산량 확대가 예상된 데 따른 움직임이라는 해석이다. 평택 외 화성 등 타지역 투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차세대 D램과 HBM 생산 설비를 집중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청주에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1월 청주 M15X 팹 준공이 예정돼 있으며, 이곳에선 D램 1b(5세대 10나노급) 전환을 가속화한다. 

또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에 이미 운영 중인 6개 후공정 시설 외에 제7후공정 센터인 'P&T 7'을 청주에 추가 신설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렇듯 청주와 더불어 용인 클러스터 1기 팹이 (2027년 5월 준공 예정)이 자리잡히면 HBM3E, HBM4 물량을 뒷받침할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AMD,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는 이미 한국에 HBM 수급을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의 양산 한계로 한국산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AI 서버 업체들은 안정적인 공급망을 최우선 요소로 고려해야하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라인 의존도는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의 기술 초격차도 메모리 허브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중국 대표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통푸마이크로 등은 HBM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초기 단계다. CXMT는 4세대 HBM(HBM3) 개발에 한창이며, 중국 내 AI 가속기를 개발하는 빅테크 납품을 목적으로 샘플을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은 HBM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축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용인 클러스터 완공 이후 평택·청주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HBM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동주 SK증권 연구원은 "VEU 철회로 인해 중국 관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되고, 국내 선단 공정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평택과 용인, 청주 등 국내 거점이 차세대 메모리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HBM은 기존 D램보다 속도와 효율을 대폭 높인 차세대 메모리로, AI 반도체·클라우드 서버·고성능 GPU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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