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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부 류준현 기자 |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살아온 환경 자체가 무언가를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한 사람이 아니다. 집단적 의사결정, 토론 과정을 거쳐 합의가 되면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형태의 활동에 익숙한 사람이다."
정부·여당 주도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발표를 계기로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리더십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당초 이 원장은 내부 반발을 의식해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의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신설에 반대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실의 반발에 일언반구하지 못하고, 입장을 급선회했다.
실제 이 원장의 기조 변화는 지난 7일 고위당정의 조직개편 발표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이 원장은 발표 하루 뒤인 지난 8일 내부 공지를 통해 "결과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12일 금감원 노조와의 만남에서 "조직 분리 비효율성,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독립성 및 중립성 약화 우려에 대해 엄중하게 생각한다"며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경영진은 깊이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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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및 금융감독원 공공기관 지정 반대 집회에서 금감원 노동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9.18/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후 지난 16일 열린 임원회의에서는 본격적으로 정부 입장을 관철·두둔해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이 원장은 "감독체계 개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수개월 논의와 당정대 협의를 거쳐 공식적인 정부 조직개편안으로 최종 확정·발표된 사안"이라며 "금감원은 공적 기관으로서 정부 결정을 충실히 집행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입법 지원 태스크포스(TF)'도 즉시 가동할 것을 지시했다.
사실상 직원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정부·여당 뜻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셈이다. 취임 일성으로 소통·합의형 인물임을 자처하며, 수차례에 걸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던 과거 그의 발언조차 단순 직원을 달래기 위함인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수장으로서 묵묵부답하는 그의 행보에 직원들의 불신도 커지고 있다. 해당 발언 이후 금감원 비대위는 "정부 결정이 금융소비자와 금융시장, 나아가 국가경쟁력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에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이찬진 금감원장에게 되묻고 싶다"며 "(이찬진 금감원장의 발언은) 금융소비자, 더 나아가 국민은 뒷전으로 하고 윗선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행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금융권에서도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금감위 설치법, 은행법 등 고쳐야 할 법안만 50여개, 고쳐야 할 조문도 9000개 이상에 달하는데, 정작 이해당사자인 실무진들의 의견조차 배제되고 있다. 숙의조차 거치지 않고 금융감독이라는 국가 백년대계가 졸속 개편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행 '금융상품 개발-판매-민원 응대' 등으로 이어지는 체제가 서로 다른 기구로 분산될 경우 기구 간 책임회피·전가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소비자 보호가 뒷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원장은 내정 당시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점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변호인이었다는 이유로 전문성·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당국 수장으로서 그가 금감원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졸속 입법부터 막고 정부·여당과 소통하는 민주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보은 인사'라는 불명예 딱지도 떼낼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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