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 현금을 대거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22일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간 관세협상과 관련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펀드 협상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의 핵심 과제이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실무 협의 과정에서 제시된 안은 타당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문서화한 일본의 외환보유액 규모 등을 설명하며 한국은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00억 달러 정도로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이 원하는 3500억 달러 현금 투자는 우리의 외환보유액의 84%에 달한다. 엔화는 기축 통화이며, 일본은 이미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5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무역 합의와 관련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자동차 및 차부품 관세 15%를 적용 받는다.
한국도 미국과 지난 7월 30일 구두로 무역 합의를 이뤘고, 현재 MOU를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미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3500억 달러 대미투자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은 대미 직접투자는 전체의 5% 수준으로 하되, 나머지 대부분은 투자 프로젝트를 간접 지원하는 보증으로 채워 실질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미국은 일본과 체결한 방식대로 한국도 MOU를 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보다 높은 비율로 자국이 지정한 분야에 직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
 |
|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상영작 '극장의 시간들' 상영 뒤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람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9.20./사진=연합뉴스
|
이 대통령은 협상 파기 가능성에 대해 “혈맹 사이에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또한 ‘무역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나’란 질문엔 “불안정한 상황을 조속히 종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체포·구금된 사태에 대해 “가혹한 처우에 한국인들이 분노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주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고의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미국이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했고 우리는 이에 대해 합리적인 조치를 모색하기로 합의했으며 현재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구체적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양측이 실질적 대화를 진행 중이지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미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오는 10월 31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초청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 일본, 미국이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이 더욱 긴밀히 협력하는 경쟁과 긴장의 악순환이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이는 한국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며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 속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평화적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로이터와의 인터뷰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방미를 앞두고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22~26일 3박 5일 일정으로 방미하며 23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뒤 24일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의를 주재한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