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공석이 된 ‘황금노선’을 둘러싼 LCC들의 경쟁은 단순한 운수권 확보를 넘어 생존을 건 전략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재배분 결과에 따라 각 항공사의 향후 운영 기조와 시장 지배력이 결정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장자제 무비자 입국 정책까지 겹치면서 누가 먼저 기회를 잡느냐가 향후 몇 년간 LCC 경쟁의 판도를 좌우할 핵심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항공업계는 치열한 경쟁과 함께 실적 악화와 부채로 인한 자본잠식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생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본지는 2편의 기획을 통해 항공업계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시장에 새로운 생존 전쟁이 시작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라 총 34개 국제선 노선이 재배분되면서 본격적인 운수권 확보 경쟁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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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B787-10./사진=대한항공 제 |
25일 업계에 따르면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다음 달 공정거래위원회의 구조적 조치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반납하는 운수권과 슬롯(공항에서 받은 시간대별 운항 허가)을 국내·외 항공사에 재배분한다.
대상 노선은 높은 수요를 기록해와 이른바 ‘황금노선’으로 분류되는 일본 나고야·오사카·삿포로와 중국 장자제·시안·베이징·상하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국제선 26개 노선과 국내선 8개 노선이다.
◆LCC, 운수권 재배분으로 본격 생존 경쟁
이번 운수권 재배분에서는 대한항공 계열인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불참 가능성이 거론된다. 합병 후 노선 독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운수권 재배분 계획인 만큼 계열사의 참여는 사실상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파라타항공 등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LCC가 노선 배분의 주인공이될 전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운수권 재분배가 단순히 ‘노선 확보’를 넘어 각사 생존 전략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인기 노선을 선점한 항공사는 단기간 내 수익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노선을 배정받을 경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좌석 판매 경쟁을 넘어 중장거리 노선 운용을 통한 브랜드 차별화, 지방 거점 노선을 통한 수요 흡수, 제휴와 연계 마케팅 확대 등 각 사의 장기 비전이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특히 양 정부의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허가 대상인 중국 장자제(장각)은 운수권 배분 참여 항공사들이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9일부터 정부는 내년 6월 30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 이에 따라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무비자로 최대 15일 동안 한국 관광을 할 수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장자제 노선 운수권을 확보할 경우 무비자 입국 시행에 따른 인‧아웃바운드 수요를 모두 누릴 수 있다”며 “중국 내 단체 관광객 유입은 물론 국내 여행객들의 수요까지 동시에 흡수할 수 있는 만큼 LCC 입장에서는 가장 입맛을 다시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꾸준히 높은 수요를 기록해온 일본, 기존 단거리 중심 노선과의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자카르타 등 동남아 노선 역시 경쟁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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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웨이항공 항공기./사진=티웨이항공 제공 |
◆가격 출혈‧운영 전략, 향후 생존 판가름
그러나 기회만큼 위험도 크다. 인기 노선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곧바로 가격 인하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출혈의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LCC들은 이미 사전 경쟁에 돌입했다. 주요 항공사들은 하반기 중국·일본 노선을 포함해 국내외 노선에서 소비자를 겨냥한 대규모 할인 프로모션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공항공사와의 협업으로 국내 항공사들이 제주 노선 티켓을 최소 9900원부터 판매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가격 인하 경쟁이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LCC들의 영업환경이 본래 ‘박리다매’ 구조긴 하지만 기재 임대료, 정비비, 유가 등 고정비 부담은 그대로인 만큼 지나친 할인은 곧바로 적자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LCC는 FSC(대형항공사)와 달리 화물 수익 비중이 거의 없다”며 “노선이 늘어도 탑승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어, 한 번 치킨게임이 시작된 이상 결국 승객 유치를 위해 무리하게 할인에 나서는 ‘출혈경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가격 경쟁이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으로 공석이 된 노선은 향후에도 순차적으로 재분배가 예정돼 있다. 즉 한 번의 ‘노선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몇 년간 주기적으로 LCC들이 가격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운수권 배분은 단순히 노선 확보 경쟁을 넘어 LCC들의 향후 운영 기조를 사실상 결정짓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에 따라 LCC들이 ‘근거리 집중형’과 ‘중장거리 차별화형’으로 뚜렷하게 갈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근거리 집중형은 일본·중국 등 단거리 황금노선을 확보해 운항 횟수를 늘리고 가격 경쟁력과 접근성을 앞세워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잦은 회항과 저가 프로모션을 통해 단기간에 탑승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좌석당 수익률이 낮아지고, 경쟁사 간 할인 경쟁이 심화되면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한계도 따른다.
중장거리 차별화형은 자카르타와 같은 동남아 노선이나 중거리 이상의 신규 노선을 확보해 ‘차별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와 운영 부담이 크지만, 일단 시장이 자리 잡히면 단가가 높은 노선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재 확보, 운항 인력, 현지 마케팅 등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해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선은 공평하게 나눠 가질 수 있지만 결국 누가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보여주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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